대기업 전속거래와 대형 유통업체 자체상표제품(이하 PB상품) 분야에서 하도급법 위반 혐의를 받는 업체 비율이 다른 일반 분야에 견줘 최대 9배나 높을 정도로 ‘갑질의 온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김상조)는 29일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한 ‘2018년도 하도급거래 서면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 업체는 하도급거래를 많이 하는 제조·건설·용역 업종의 원사업자(대기업) 5천곳과 수급사업자(중소기업) 9만5천곳 등 모두 10만곳이다.
조사 결과 지난해에 비해 하도급 거래 관행이 개선됐다고 응답한 하도급업체 비율이 94%로 지난해 조사 때 86.9%에 비해 7.1%포인트 개선됐다. 특히 건설업종의 개선 응답률은 55.9%에서 91.8%로 대폭 높아졌다. 김상조 위원장 취임 이후 공정위가 갑질 근절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추진한 성과로 해석된다.
하지만 전속거래(중소기업이 1개 대기업하고만 거래하는 형태)를 하는 자산 5조원 이상 재벌그룹 소속 142개 대기업의 경우 법위반 혐의 업체 비율이 전속거래를 하지 않는 일반 기업에 견줘 기술자료 유용은 9배(0.7%→6.3%), 부당 경영간섭은 3.5배(11.3%→39.4%), 부당한 대금결정 및 감액은 3배(11.1%→32.4%)에 달했다. 전속거래를 하는 이유도 대기업은 “품질유지를 위해서”라는 응답이 70.8%로 가장 높았으나,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요구 때문”이라는 응답이 60.5%였다. 공정위가 불공정 하도급거래 발생 가능성이 높은 전속거래 강요 금지를 적극 추진하는 이유를 뒷받침하는 결과다.
또 대형마트, 대형슈퍼(SSM), 편의점 등 대형 유통업체 중에서 PB상품 관련 하도급거래를 하는 12개 업체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법위반 혐의 업체 비율이 일반 제조 하도급분야에 비해 부당반품은 6배(4.2%→25%), 부당 위탁취소는 1.7배(9.7→16.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PB상품의 하도급거래 규모는 연간 2조7천억원, 하도급업체 수는 2045개에 이르러 PB상품 시장의 갑질 근절이 공정위의 새로운 정책과제로 떠올랐다. 대형 유통업체별 PB상품 하도급거래 규모를 보면 지에스리테일 1조5천억원, 이마트 6364억원, 롯데마트 2377억원, 홈플러스 1012억원의 순서다.
공정위는 이번 실태조사에서 기술유용, 대금 부당 감액, 부당특약 설정 등 하도급법 위반 혐의가 나타난 2400여개 업체에 대해 자진시정을 요청하고, 자진시정을 하지 않거나 혐의를 부인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하기로 했다. 또 올해 법위반 혐의 업체 비율이 높게 나타난 취약 분야는 내년에 집중 점검하기로 했다. 특히 전속거래를 하는 대기업, PB상품 하도급거래를 하는 대형 유통업체는 전속거래 강요, 경영정보 부당 요구 행위를 중점 점검할 계획이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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