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대기업 소속 상장회사의 이사회와 산하 위원회에 상정된 안건 가운데 부결된 안건이 거의 없어 경영감시 기능이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감 몰아주기’ 등 총수일가 사익편취와 관련성이 깊은 대규모 내부거래는 경쟁입찰 대신 수의계약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도 수의계약 사유조차 적시되지 않고 통과된 안건이 10건 중 8건을 넘을 정도로 심의가 부실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6일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하는 ‘2018년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을 발표했다. 이번 분석은 자산 5조원 이상 공시대상 기업집단 중에서 전년과 비교가 가능한 56개 기업집단 소속 1884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56개 기업집단 소속 상장회사 이사회의 경우 사외이사 비중이 50.1%를 차지해 절반을 넘었다. 또 이사회 산하에 각종 위원회를 설치한 비중도 높아졌다. 사외이사 후보추천위 설치 비중은 58.9%로 2014년 53.4%보다 높아졌다. 같은 기간 감사위는 69.3%에서 73.1%, 보상위는 16.8%에서 26.9%, 내부거래위는 23.1%에서 35.6%로 각각 높아졌다. 공정위는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에 대한 법집행 강화와 규제대상 확대 추진에 따른 영향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사회와 위원회에 올라간 안건 중 부결된 안건 비중은 미미했다. 지난해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1년간 이사회 안건 5958건 중에서 부결된 안건은 8건(0.13%)에 그쳤다. 또 같은 기간 위원회 안건 1501건 중에서 부결된 안건은 1건(0.07%)에 불과했다. 특히 이사회와 내부거래위의 안건 중에서 대규모 내부거래와 관련된 295건은 부결이 1건도 없었다. 공정위는 “대규모 내부거래 안건 중 수의계약 체결이 279건(94.6%)인데 수의계약 사유를 밝히지 않은 안건이 228건(82%)에 달해 심의가 충실하게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소수주주권 보호장치인 집중·서면·전자투표제 도입 비율은 4.4~25.7%로 전체 상장사 평균치인 5.3~60.6%에 못미쳤다.
총수 있는 49개 재벌대기업 소속회사 1774개 중 총수일가가 1명 이상 등기이사로 등재된 회사의 비율은 21.8%였다. 총수일가가 등기이사로 등재된 회사가 한 곳도 없는 재벌은 한화·신세계·씨제이·미래에셋·태광·이랜드,·디비(DB)·동국제강 등 8개였다. 반면 일감 몰아주기 등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대상인 217개 회사의 경우 총수일가의 등기이사 등재 비율이 65.4%(142개사)로 전체 평균치보다 3배나 높아, 재벌이 책임경영보다 일감 몰아주기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은정 경제개혁연구소 정책위원은 “이사회 산하 위원회의 설치가 부족하고 안건처리가 부실한 상황이어서 총수일가를 견제할 독립적인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이 꼭 필요하다”며 “국회가 집중투표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출(대주주 의결권 제한) 등이 담긴 상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해 소액주주가 추천한 사외이사·감사위원이 선임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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