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제의 취지에 공감한다면서, 다만 보완책 마련이 늦어진 것은 아쉽다는 뜻을 밝혔다.
박용만 회장은 지난 24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출입기자들과 송년 인터뷰를 갖고, 특유의 솔직한 태도로 경제현안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박 회장은 문재인 정부가 너무 친노동정책을 펴는 것 아니냐는 보수언론의 질문에 대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저임금 근로자 비율이 최고 수준이고, 근로시간은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며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취지에 인식을 같이하며, 이들 정책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친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총·중소기업중앙회 등 다른 경제단체와 크게 다른 입장이다.
박 회장은 다만 “중견·중소기업들이 한계상황에 처해 있어 비용부담이 커지는 조처가 나오니까 극렬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며 “최저임금을 너무 급하게 올리고, 유화조처(보완책)가 늦은 것은 만시지탄”이라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정부가 기업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높다는 보수언론의 질문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가 이미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정부가 과거와 같은 해법이 아니라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해법을 내놓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정부가 기업 현장 목소리를 경청한다는 근거로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 예측가능한 최저임금 결정방식 도입 추진, 주52시간제 위반 사업주 처벌 유예(계도)기간 연장 등을 꼽았다. 그는 “우리 경제가 중장기적으로 구조적인 하향세에 있어 해결책 역시 구조적이고 근본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상의의 건의에 정부가 공감해줬고, 내년 정책에도 일부 반영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최하위권인 폐쇄적인 규제환경, 대기업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중소기업의 낮은 생산성, 선진국에 비해 부진한 서비스산업, 취약한 사회안전망 등 4가지를 꼽으며, “역대 정부가 고도성장기를 지나면서 시급히 해결해야 했는데 오랫동안 단기적인 정치에 매몰되어 대응을 미뤄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박 회장은 올해 한국경제 전망과 관련해 “획기적인 노력이 없으면 중장기적인 하락세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촘촘한 규제 그물망과 서비스산업 진출 장애 존속, 소비심리 위축과 내수 부진, 미·중 무역갈등 지속 등 대외환경 악화를 우려했다. 박 회장은 그러나 정부가 내년 예산 증액, 재정 조기 투입, 주력산업 지원정책 마련에 나선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기업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 회장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들에 대해 원인과 해법을 알고 있는데도 정책 대안들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다”며 그 첫 번째 이유로 성장과 분배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이분법적 시각을 지적했다. 박 회장은 “이념이나 이해득실에 따라 성장과 분배 중에서 취사선택을 하라는 것은 시대의 논리가 아니고, 이런 이념적이고 소모적 논쟁이 계속되면 상호불신의 벽만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시장에서 자발적 성장이 이뤄지도록 규제나 제도 같은 플랫폼을 바꾸고, 분배를 위해서도 양극화 해소나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며 성장과 분배의 동시추진을 강조했다. 분배 방법론에 관해서는 민간 자원을 이용하기보다 가급적 정부의 직접적인 분배정책을 써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두 번째 이유로 이슈에 대한 종합적(전체적) 접근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사회안전망이 오이시디 35개 회원국 중 34위로 실직에 대한 공포가 상존하는데 선진국 수준의 고용 유연성을 요구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꼬집었다. 또 과거의 규제 시스템과 제도가 성장과 혁신을 막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 활력과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는 것과, 규제가 폐지되면 국민이 불안해하고 담당자가 징계를 당하는 상황에서 공무원에게 규제를 풀라고 하는 것도 사례로 꼽았다.
박 회장은 “대립적인 구도와 프레임에서 벗어나 한국경제가 당면한 구조적인 현안을 제기하지 않으면 미래가 상당히 걱정된다는 게 상의의 입장”이라며 “우리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전체를 하나로 보고 모든 이슈를 좀 넓은 관점에서 풀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경제단체 대표로서 기업의 이해관계를 더 적극적으로 대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상의는 법정단체이고 전체 경제계를 아우르기 때문에 회원 기업뿐만 아니라 나라경제 전체가 잘되는 방향을 선택한다”며 “회원 기업의 이해만 대변하면 당장은 입에 달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쓴 일이 많다”고 말해, 회원기업의 이해 대변을 최우선시하는 경총 등 다른 경제단체와 역시 차별성을 보였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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