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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독점기업을 해체하라”…우파의 ‘자본주의 구하기’는 성공할까

등록 2019-01-09 17:58수정 2019-01-09 20:39

[더 나은 사회]
<자본주의의 신화>·<급진적 시장들> 등
불평등 확대를 ‘독점’ 탓 돌리는 흐름 등장
반독점 정책, 데이터 개방 등 주장 이어져
규칙과 질서 지키는 정부 역할 되새길 만
2018년 11월1일 미국 메사추세츠주 켐브리지의 켄달광장 근처에서 구글 직원들이 ‘안전한 일터’를 주장하며 모여있는 모습. 이날 하루 전세계 구글 직원들은 회사에 항의하는 의미로 동시에 사무실 밖으로 나오는 집단행동을 벌였다. EPA/ 연합뉴스
2018년 11월1일 미국 메사추세츠주 켐브리지의 켄달광장 근처에서 구글 직원들이 ‘안전한 일터’를 주장하며 모여있는 모습. 이날 하루 전세계 구글 직원들은 회사에 항의하는 의미로 동시에 사무실 밖으로 나오는 집단행동을 벌였다. EPA/ 연합뉴스
‘8인의 배신자’.

혁신의 심장부라 불리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탄생 주역들에겐 이런 별명이 따라다닌다. 트랜지스터 공동발명자 윌리엄 쇼클리 박사가 실리콘밸리에 세운 쇼클리랩에서 일하던 고든 무어 등 8명은 1957년 다 함께 회사를 뛰쳐나와 이웃에 새 둥지를 차렸다. 언제든지 경쟁기업으로 자리를 옮길 무한 자유를 허락한 캘리포니아의 제도 덕택이다. 자유로운 영혼과 경쟁을 마다않는 피는 실리콘밸리에 널리 퍼져 애플과 페이스북, 구글을 잇달아 싹틔운 거름이 됐다. 애초 실리콘밸리의 유전자는 어떠한 형태의 독점과도 거리가 멀었던 셈이다.

초대형 기술기업이 지배하는 오늘날 모습은 전혀 딴판이다. 알파벳(구글)·애플·아마존·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 등 이른바 ‘빅5’의 시가총액은 지난 8일 현재 3조6천억달러(약 4천조원)를 웃돈다. 영국과 프랑스 등 내로라하는 나라들조차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이들 기업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다른 산업 분야로 시야를 넓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미국을 예로 들어보자. 보험·은행·신용카드에서 항공사와 공항, 심지어 맥주와 병원에 이르기까지…. 극소수 업체들이 완전 장악한 독과점 산업의 사례는 차고도 넘친다. 경쟁을 먹고 자란다는 자본주의는 21세기 들어 독점의 견고한 성채로 탈바꿈한 것일까.

“독점기업은 자본주의 좀먹는 기생충”

허울뿐인 경쟁만 남은 자본주의의 현주소를 뿌리부터 파헤친 ‘묵시록’이 인기몰이에 나서 눈길을 끈다. 지난해 11월 말 미국에서 출간된 <자본주의의 신화>가 주인공. 자산운용사와 투자은행에서 일하다 지금은 독립적인 리서치회사를 운영하는 조너선 테퍼가 쓴 이 책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책이 서점에 깔리기도 전에 서둘러 ‘올해의 책’(2018년)으로 선정했을 정도다. 지난 2013년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가 <21세기 자본>을 출간했을 당시와 비견될 만하다.

‘독점, 그리고 경쟁의 죽음’이라는 부제를 단 <자본주의의 신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쾌하면서도 도발적이다. 지은이는 자본주의를 지지·찬성한다는 말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부터 되물어보라고 주문한다. 공룡으로 성장한 독점기업에 유리한 정책과 제도가 곧장 경쟁과 시장, 결국 자본주의엔 이롭지 않을 수도 있어서다. 독점기업이 쥐락펴락하는 현재의 경제구조를, 관할지역을 나눠 통행료를 뜯어가는 마피아 세상에 빗댄 지은이는 독점기업을 향해 “자본주의를 좀먹는 기생충”이라 주저없이 비난해댄다. 20세기 초 사회주의 혁명가(블라디미르 레닌)가 내뱉었던 저주가 100년 뒤 자본주의의 꽃이라 할 금융시장 이코노미스트의 입에서 다시 튀어나온 건 무척이나 흥미롭다.

눈여겨 볼 건, 주로 우파 진영으로 묶일 만한 학자와 전문가 사이에서 이런 목소리가 최근 뚜렷한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지난해 5월 출간된 <급진적 시장들>이란 화제의 책 역시 ‘더 많은 시장’을 찬양한 바 있다. 이뿐 아니다. 자유주의의 선봉장 노릇을 자임하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지난해 11월 독점을 파괴하고 경쟁을 되살리는 ‘새로운 혁명’을 설파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로비 금액 1달러당 226달러 면세 혜택

통상 기업친화적 행태를 보이기 마련인 이들은 왜 지금 독점 해체를 부르짖고 나섰을까. 시장을 장악한 소수가 경쟁을 압살하고 자본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는 냉철한 진단 때문이다. 우파 나름의 ‘자본주의 구하기’ 해법인 셈이다. 크레디트스위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1996년부터 2016년까지 20년 새 미국 상장기업 수는 절반으로 줄었다. 총민간투자 대비 인수·합병 금액 기준으로, 지난 30년 동안의 인수·합병 규모는 역사상 산업 집중도가 가장 높았던 19세기 말~20세기 초(도금시대)를 넘어섰다.

결과는? 독점기업들의 무법천지 세상. 구글의 합법적 탈세 전략을 뜻하는 ‘더블 아이리시 위드 어 더치 샌드위치’란 표현은 상징적이다. 전세계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아일랜드 자회사로, 다시 네덜란드 자회사로 옮겨놓은 다음, 결국엔 아일랜드 등록기업이 소유한 버뮤다 소재 서류상회사로 이전시키는 방식을 뜻한다.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미국 이외 시장에서 거두는 구글이 이런 방식으로 ‘절약’하는 세금은 연간 600억유로(약 80조원)에 이른다. 로비 금액 1달러당 평균 226달러의 세금 감면 혜택을 챙긴다는 메이저 제약업체들의 화려한 성적표 또한 뒤지지 않는다. 규제는 외려 경쟁을 몰아내는 독점기업의 방패막이로 전락하기 일쑤다. 오죽하면 골드만삭스의 로비스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놓았을까. “솔직히 우리는 규제에 찬성한다. 규제당국은 우리의 친구다.”

2018년 4월10일 미국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보호정책에 항의하는 활동가들이 마이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얼굴을 한 입간판을 세워둔 모습. UPI/ 연합뉴스
2018년 4월10일 미국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보호정책에 항의하는 활동가들이 마이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얼굴을 한 입간판을 세워둔 모습. UPI/ 연합뉴스
문제는 ‘어떻게’다. 우선 강력한 반독점 정책의 부활이 첫 손에 꼽힌다. 과거 경험도 있다. 20세기 초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 정부는 ‘독점과의 전쟁’(셔먼법)을 벌여 독점기업의 상징인 스탠더드오일과 아메리칸토바코를 각각 33개와 4개 업체로 해체시켜버렸다. 이후 60~70년간 이어진 미국 경제의 역동성과 생명력의 젖줄이다. 초대형 기술기업이 손에 쥔 방대한 데이터를 공공재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랴해봄직하다. 진입장벽을 낮추고자 특허와 지적재산권을 대폭 완화하는 것 또한 경쟁을 되살리는 데 보탬이 된다.

보다 급진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급진적 시장들>을 쓴 에릭 포스너 시카고 로스쿨 교수와 글렌 웨일 마이크로소프트 수석연구원은 “사적 재산이란 곧 독점”이라며 완전한 자유경쟁에 기초한 ‘경매 원리’를 사회 각 분야에 적용해 사실상 사적 재산을 없애는 효과를 거두자는 매우 파격적 주장(관련기사)을 펼쳤다. 시장을 사회의 핵심원리로 확고하게 자리매김시켜(‘시장의 급진화’), 특정 자산에 대한 권리를 사회와 ‘점유자’가 공유하도록 하자는 메시지다.

“피케티 진단은 암 환자에 마약 주는 꼴”

최근 잇달아 터져나온 이런 주장들은 ‘경쟁의 죽음’과 ‘독점의 강화’를 불평등 확대의 핵심 원인으로 꼽는다는 점에서, 넓게 보아 불평등 해법으로 한데 묶일 수도 있다. 불평등에 맞서는 여러 해법이 나와 있다. 지난해 8월 엘리자베스 워런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메사추세츠)이 발의한 ‘책임있는 자본주의법’, 이어 9월 영국 노동당이 제안한 ‘포용적 소유기금’이 대표적이다. 최상위층에 대한 징벌적 과세안(피케티)도 빼놓을 수 없다. 재분배 강화나 노동(자)의 세력 증대에 방점을 둔, 주로 좌파 진영에서 제시하는 해법들이다.

그러나 두 진영 사이엔 시각의 차이가 확연하다. <자본주의의 신화>는 “피케티의 진단은 암 환자에게 마약을 처방하는 꼴”이라며, “불평등은 낮은 임금 때문이 아니라 일상에서 독점기업이 통행료를 뜯어가기 때문”이라 못박았다. ‘더 많은 경쟁’만이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어떠한 형태의 정부 개입조차 반대하는 ‘시장근본주의’와도 분명히 선을 긋는다는 점은 새겨둘 필요가 있다. “경쟁은 패배자를 위한 것”이라며 정부 개입을 반대하고 독점을 찬양한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제로 투 원>의 지은이)과는 한 배를 타기 힘든 이유다.

과연 더 많은 경쟁은 자본주의를 구해낼 수 있을까. 경쟁과 시장을 되살리면 현실의 불평등도 눈 녹듯 줄어들 수 있을까. 이들의 주장엔 허점이 많다. 우선, 모든 규제를 싸잡아 독점기업이 뜯어가는 ‘통행료(지대)’로 몰아붙이는 건 지나친 비약이다. 예를 들어 제너릭(복제약) 개발을 방해하거나 과도한 인증제도를 무기로 신규 시장진출을 막는 데 규제가 악용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위기 가능성과 위험을 사전예방하는 규제의 긍정적 측면마저 깡그리 부인해선 안된다. 현실의 불평등은 단지 경쟁을 되살리는 것을 넘어 정부의 적극적 재분배 정책을 포함한 종합적 해법으로 맞서야할 만큼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도 중요하다.

독점기업의 혁신성 또한 딜레마다. 구글의 ‘열린 혁신’이나 유투브의 사례에서 보듯이, 독점기업의 존재가 새로운 사업 기회를 열어주거나 다른 기업들의 비용을 낮춰주는 긍정적 효과도 무시할 순 없다. 경제 패러다임이 19~20세기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까닭이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가 자유경쟁의 탯줄을 끊고 탄생했다는 주장 자체가 ‘신화’일 뿐이다. 마을의 공유지를 폭력적으로 점유해 사적 재산이라는 이름의 울타리를 친 인클로져 운동이 생생히 증명한다. 자본주의를 열어젖힌 선조들이 자유롭고 공정한 질서를 만들고자 중세시대의 특권과 전통에 맞서싸운 영웅만은 아니었음을.

규칙 없는 자본주의는 무너진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 맥락에 비춰봤을 때 한번쯤 되새겨볼만 한 대목도 있다. 시장과 경쟁이 제대로 뿌리내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역할과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 규칙과 질서를 깨는 ‘힘센’ 행위자에 유독 무딘 한국 정부의 칼날이 초라해 보이는 이유다. “경쟁 없는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아니다”라는 <자본주의의 신화>의 결론은 한국 사회에 ‘규칙 없는 자본주의는 무너진다’로 해석되는 게 옳다.

또 하나. ‘제도 설계’(메커니즘 디자인)의 교훈도 곱씹어볼 만하다. 살아 숨쉬는 생명체(인간)의 행동엔 복잡다단한 심리적 기제가 작동하기 마련이다. 정책이 의도한 효과를 내려면 경제주체의 행동을 이끌어낼 유인(인센티브) 구조와 전달경로를 정교하게 짜는 게 필수다. ‘사람 중심 경제’를 내세웠음에도 정작 인간 행동의 내면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부족했던 우리의 정책 현실에 시사하는 바 크다. ‘경쟁만이 살 길’이라는 단순·명쾌한 논리가, 적어도 제도 설계면에선 반걸음 앞서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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