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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읽어주는 여자-로저드뷔
파네라이, 위블로, 리처드밀, 롤렉스, 오메가, 까르띠에…. 널리 알려진 명품시계 브랜드로, 수백만~수천만원을 호가한다. 일반인이 범접하기 쉽지 않지만 한번쯤 소장하고 싶다는 바람은 갖기 마련이다.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에 불과하지만 이를 뛰어넘어 부와 명예, 성공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요즘 주목받는 ‘하이엔드’(최고급) 브랜드를 꼽으라면 단연 1995년 론칭한 로저드뷔(Roger Dubuis)다. 스위스 브랜드이긴 하나, 최장 수백년을 자랑하는 세계 유수 브랜드에 견줘 역사는 길지 않다. 그럼에도 23년 만에 빠르게 성장해 다른 고급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한 비결은 실험적·혁신적이며 강렬하고 대담한 디자인, 최고급 시계 제조 기술이 결합한 뛰어난 품질이다. 브랜드 이름을 창업자이자 시계 제작자인 자신의 이름에서 따올 정도로 애착과 자긍심이 대단
했던 로저 드뷔의 장인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내에서는 미국 메이저리그 한국 선수인 추신수 선수 시계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로저드뷔 애호가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상대적으로 생소했던 로저드뷔의 국내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졌고, 로저드뷔는 ‘추신수 에디션’을 따로 제작해 전달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탤런트 이종석이 MBC 드라마 등에 착용하고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로저 드뷔, 출생과 생애
로저 드뷔는 1938년 스위스 레만호수 근교 마을 벌목꾼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목공을 접한 덕분에 어릴 적부터 공예산업에 눈을 떴다. 10살 되던 해에 첨탑 시계를 관리하던 마을 구두수선공과 친해지면서 그를 대신해 시계의 종을 관리할 기회를 얻었고, 시계 제조라는 세계에 눈뜨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제네바에 있는 시계 제조학교에 진학한 그는, 졸업과 동시에 론진에서 9년 동안 시계 제작 실무를 쌓았다.
이후 시계 제작자로 독립적인 활동을 이어오다, 1980년대부터 장 마르크 비더레히트와 함께 제네바에서 ‘드뷔&비더레히트’ 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다 오랜 친구이며 시계 수집가이자 마케터인 카를로스 디아스와 1995년 로저드뷔를 탄생시켰다. 그때 드뷔의 나이는 57살. 시계 제작과 디자이너로서 꽤 늦은 출발이었지만, 40년 넘게 밑바닥부터 쌓아온 전문 지식과 경험 덕분에 로저 드뷔는 회사 설립과 동시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오래된 시계를 복원하는 작업 실력이 뛰어나다고 당시부터 정평이 나 있었다.
로저드뷔, 탄생과 역사
로저드뷔는 설립 초기부터 매뉴팩처(공장제 수공업)를 ‘모든 자사 무브먼트에 제네바실’ 인증을 받는 유일한 시계 메이커로 잡을 만큼 통찰력이 뛰어났다. 제네바실은 아주 엄격한 요건을 충족하는 시계를 만드는 소수의 시계 제작자에게 제네바주가 발행해주는 공식 보증마크다. 시계에 탑재된 기계식 무브먼트가 제네바에서 일일이 장인 손으로 직접 제조·조립됐음을 인정해주는 상징으로 ‘하이엔드 브랜드’의 필수 조건이다.
로저드뷔는 시계의 무브먼트를 구성하는 요소 수백 개와 시계 외 부요소를 모두 수작업으로 제작한다. 2017년 10월14일 타계한 로저 드뷔는 살아생전 “이런 제조 방식은 품질과 신뢰도를 보장하기 위한 모든 구성요소 생산과정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은 물론 혁신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요소”라 강조했고, 지금도 그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로저드뷔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2000년 기계식 시계로는 몹시 현대적이고 화려한 다이얼을 가진 투머치(TooMuch), 2001년 골든스퀘어(Golden Square)를 차례로 내놓으면서다. 화려하고 트렌디한 겉모습과 동시에 최고 품질을 가진 기계식 시계라는 입소문이 났다.
로저드뷔 컬렉션
현재 로저드뷔의 대표 컬렉션으로 오마주(Hommage), 엑스칼리버(Excalibur), 벨벳(Velvet), 펄션(Pulsion), 라모네가스크(La Monegasque) 등이 있다. 특히 엑스칼리버는 로저드뷔의 대표 시계라 할 만하다. 그 이름에서 쉽게 알 수 있듯, 고대 영국을 배경으로 한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성검 엑스칼리버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중세 이후 유럽의 문화와 에술 분야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며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45mm 지름의 시계 다이얼 위에 재탄생한 것이다.
엑스칼리버는 2006년 처음 국제시계박람회(SIHH)에 참가해 6개 무브먼트를 선보였다. 2007년에는 엑스칼리버에 퍼페추얼 캘린더, 미닛 리피터, 투르비용 모델을 더했다. 2008년 기술적인 면을 강조한 킹스퀘어, 2009년 스켈레톤 더블 투르비용 등 기술적으로 탁월한 시계들을 소개했다.
엑스칼리버가 인기를 끈 계기는 2013년 그랑푀(고온 오븐에 구워 단단한 에나멜을 만드는 기술) 기법으로 튜더 왕조의 녹색과 흰색을 재현한 원탁(다이얼)을 둘러싼 12명 기사를 화려하게 표현한 ‘엑스칼리버 원탁의 기사 I’를 공개하면서다. 이어 2015년 출시한 ‘엑스칼리버 원탁의 기사 Ⅱ’는 원탁의 전설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해 더욱 뛰어난 예술적 감각과 기술적 정교함을 더했다. 초소형 각인을 위해 금이 아닌 청동으로 만든 기사상을 흑옥 소재의 원탁 주위에 배치해 웅장한 느낌을 강하게 연출한 것이 특징이다.
로저드뷔 시계는 화려한 디자인이 오히려 기술적인 면을 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없지 않다. 물론 기우다. 로저드뷔의 잠재력은 2008년 리치몬트그룹이 로저드뷔를 영입하면서 빛을 발했다. 이후 리치몬트그룹의 까르띠에가 선보인 제네바 인증 무브먼트가 그 예로, 전적으로 로저드뷔의 노하우 덕분에 가능했다. 완벽함을 위한 끝없는 탐구, 적절한 표현 방식을 위한 기나긴 탐색, 독점 기술 개발은 로저드뷔가 지켜나가는 가치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엑스칼리버 원탁의 기사 I’ 로저드뷔 제공
로저 드뷔. 로저드뷔 제공
엑스칼리버 슈팅스타. 로저드뷔 제공
‘엑스칼리버 원탁의 기사 I’ 로저드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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