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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공동 브랜드에서 ‘종합상사’까지…사회적경제에 부는 ‘유통 혁명’

등록 2019-01-23 18:22수정 2019-01-24 15:04

[더 나은 사회]
‘유통’에 취약한 사회적경제기업
시장개척·판로확대가 ‘발등의 불’
소셜 벤더 등 전문 역량 결합하고
연대와 협력으로 힘 키우기 결실
11일 서울 도봉구 농협하나로마트 창동점에 있는 사회적경제기업 전용몰인 ‘공감마켓 정’에서 아빠의 주방일에 특화된 고무장갑을 팔고 있다.
11일 서울 도봉구 농협하나로마트 창동점에 있는 사회적경제기업 전용몰인 ‘공감마켓 정’에서 아빠의 주방일에 특화된 고무장갑을 팔고 있다.
서울 은평구 혁신파크에 공방을 두고 있는 이풀약초협동조합(이하 이풀)은 2월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기대에 부풀어 있다. 전국의 약초재배농가 15곳이 이풀의 조합원이다. 신제품은 채식을 하는 소비자를 겨냥한 샤브샤브용 국물팩이다. 황기, 당귀, 구기자 등 조합원이 납품한 친환경 약초를 배합해 시원하면서도 건강한 국물이 우러나게 만들었다. 이번 제품 개발은 새로운 시도였다. 지난해 9월 시제품을 만든 뒤 지역 두레생협과 협업해 제품 개선 작업을 했다. 생협 조합원 30여명이 시제품을 먹어본 뒤 몇차례 모여 다양한 의견을 줬다. “육식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천연 육수 만들기’란 제품명은 어울리지 않아요” “식구가 적은 집이 많은데 한 번에 쓰기엔 양이 많은 것 같아요”. 결국 제품명은 ‘다싯물 이풀채수(菜水)’로, 일회용 포장 용량은 35그램에서 25그램으로 줄었다. 가장 좋은 맛을 찾아 재료 배합 비율도 조정했다. 샤브샤브뿐 아니라 밥 지을 때도 넣는 등 피드백을 반영한 다양한 사용 방법을 포장에 추가했다. 문정희 이풀 사무국장은 “시제품보다 한결 소비자 친화적인 제품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이풀의 국물팩 제품 개발은 요즘 사회적경제기업들의 노력을 잘 보여준다.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자활기업 등 사회적경제기업들은 장애인이나 취약계층 고용 등 사회적 가치를 우선하는 기업이다. 하지만 작고 영세한 기업이 많아 대형 유통업체들이 요구하는 납품 조건을 맞추기 어렵다. 처음부터 판로 확보가 난관에 봉착한다. 별도의 사회적경제기업 전용 온라인쇼핑몰도 나왔지만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사회공헌 차원에서 공간을 내준 대형마트의 사회적경제 매대는 한켠에 비켜나 있기 일쑤다. 시장개척은 사회적경제기업에 발등의 불이 됐다. 지난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실시한 조사에서 사회적기업 관계자들은 지원이 필요한 분야로 ‘판로 확대’(21.6%)와 ‘홍보’(20.4%)를 가장 많이 꼽았다.

두레생협 조합원들이 지난해 9월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이풀약초협동조합의 국물팩 시제품 품평을 위해 직접 끓여서 맛을 보고 있다.  이풀약초협동조합 제공
두레생협 조합원들이 지난해 9월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이풀약초협동조합의 국물팩 시제품 품평을 위해 직접 끓여서 맛을 보고 있다. 이풀약초협동조합 제공
제품과 유통 경쟁력 없이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게 분명해지자, 자생력을 확보하려는 시장개척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관통하는 열쇳말은 ‘연대’와 ‘협력’이다. 작은 기업들이 힘을 합쳐 새로운 제품과 브랜드를 개발하고 유통의 힘을 키운다. 원재료 구매에서 제조, 판매에 이르기까지 가치사슬의 상하를 사회적경제기업들끼리 연결해 서로 돕는다. 이풀의 경우처럼 생협, 조합, 대기업 등이 사회적경제기업과 협력해 신제품을 개발하고 품질과 디자인을 개선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대형마트 등 일반 유통망에서 살아남기를 시도한다. 사회적경제기업의 매출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공조달 시장에 접근할 수 있게 돕기도 한다.

■ 종합상사형 ‘소셜 벤더’의 등장

최근 눈에 띄는 변화는 다양한 사회적경제기업과 거래하며 유통채널에 맞춤 공급하고, 시장개척과 제품개발 및 개선에도 관여하는 종합상사형 ‘소셜 벤더’의 등장이다. 과거 개발연대 시대에 종합상사는 중소기업의 수출업무를 대행하며 외국 바이어의 눈높이에 맞는 제품도 요구하는 벤더였다. 경주의 경북사회적기업종합상사협동조합, 대구의 무한상사가 대표적인 종합상사형 소셜 벤더인데, 성과가 좋자 여러 광역단체가 비슷한 조직 설립을 잇달아 추진하고 있다.

경북사회적기업종합상사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2015년 95개 사회적기업이 자본금 1억4천만원을 출자해 만들었다. 그동안 자재물류 전문대기업과 연계해 식자재 공동물류 사업을 펼쳤고, 대형자본의 골목상권 장악에 맞서 커피 공동브랜드를 개발했으며, 공정여행·행사대행 등 사회적기업 간 협력사업도 펼쳐왔다. 2016년에는 도시락을 제조하는 4개 사회적기업이 모여 도시락 용기의 품질과 디자인을 고급화하고 대량주문을 통해 단가를 낮췄다. 덕분에 인지도가 높아져 일부 업체는 지역의 공기업에 도시락을 납품할 수 있게 됐다. 이원찬 경북사회적기업종합상사 상임이사는 “팔 수 있는 시장의 성격에 맞춰 원료 구매부터 제조, 판매까지 사회적경제기업 간 융복합을 통해 성장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풀약초협동조합이 지난해 9월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두레생협 조합원들과 시제품 개선을 위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풀약초협동조합 제공
이풀약초협동조합이 지난해 9월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두레생협 조합원들과 시제품 개선을 위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풀약초협동조합 제공
서울 농협 하나로마트 창동점에는 사회적경제기업 제품을 파는 ‘공감마켓 정’이 입점해 있다. 495㎡ 규모의 매장에 사회적경제기업 46곳의 제품 1천여개가 빼곡하게 전시돼 있다. 하지만 물건을 몇개 더 팔아주는 게 본래 이 매장의 주목적이 아니다. 어느 제품이 잘 팔리고 소비자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등 유통 데이터를 축적하고, 제조사에 피드백을 줘 새로운 개념의 제품을 개발하거나 품질을 높여가는 소셜 벤더 역할이 목표다. 이 매장을 운영하는 ‘함께 일하는 세상’의 이철종 대표는 “사회적경제기업의 자체 유통 플랫폼을 구축하는 건 매우 어려운 만큼 대형마트에 입점하는 전략으로 가야 한다”며 “소셜 벤더의 역할은 사회적경제를 (대형마트라는) 주류의 틀 안에 넣는 것”이라고 말했다.

■ 생협이 훌륭한 협력 파트너 노릇도

협동조합 사이의 협력은 협동조합 7원칙 중 하나다. 협동조합뿐 아니라 사회적경제 영역의 협력은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만든다. 많은 소비자를 확보한 생협이 가장 좋은 협력 파트너다. 아이쿱생협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들에 지속적으로 판로를 열어왔다. 휴지, 가방, 양말, 샴푸 등 생활용품부터 과자, 잼, 채소 등 입점 품목도 다양하다. 2012년 14억원이던 거래실적은 2017년에는 43억원으로 뛰었다. 상품 기획 단계부터 사회적경제기업과 함께 진행한 사례도 있다. 사회적기업 ‘동물의 집’은 아이쿱생협이 파는 무항생제 오리와 닭가슴살을 원재료로 차별화된 반려동물 간식을 만들어 아이쿱뿐 아니라 다른 생협에도 납품하고 있다. 2017년 경기도 따복공동체지원센터는 두레생협, 행복중심생협과 협력해 25개 생협 매장에 사회적경제 상품을 입점시켜 5억56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강화도의 발달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우리마을과 협업하는 풀무원의 이효율 총괄사장이 지난해 콩나물공장 2층 증축식에 참석한 뒤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우리마을 제공
강화도의 발달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우리마을과 협업하는 풀무원의 이효율 총괄사장이 지난해 콩나물공장 2층 증축식에 참석한 뒤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우리마을 제공
강화도에 있는 발달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우리마을’도 협력의 덕을 톡톡히 봤다. 우리마을은 콩나물을 재배해서 풀무원 및 아이쿱, 두레생협 등에 납품한다. 우리마을은 2012년부터 매월 한차례 이상 방문하는 풀무원 연구진의 도움으로 콩나물의 질을 크게 높일 수 있었다. 그 덕에 2012년 10억원이던 매출액은 2016년에는 21억9천만원까지 오른 뒤, 지난 2년간은 17억~18억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마을 원장인 이대성 성공회 신부는 “콩나물이 웃자라 잔뿌리가 생기거나 짓무름이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찾기 어려워 고생을 했다”며 “풀무원에서 재배수의 온도가 일정하지 않아서 생기는 증상이란 진단을 해줘 품질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 “협력 통한 작은 성공사례 쌓아가야”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의 우선구매 규모만 1조원에 이르는 공공구매는 사회적경제기업의 젖줄이다. 종합상사나 소셜 벤더들은 공공기관 구매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설명회, 구매상담 등을 수시로 주선하고 있다. 임영락 무한상사 국장은 “공공기관 구매 담당자가 (사회적경제기업의) 제품생산 과정을 이해하더라도 그들 역시 가격과 품질 조건을 요구한다”며 이에 맞출 수 있느냐가 과제라고 강조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은 사회적경제 판로지원 통합플랫폼인 ‘이-스토어(e-store) 36.5+’에서 공공조달 정보를 제공하는데, 올해 우선구매 실적관리시스템을 2차로 구축해 공공기관, 사회적경제기업별 세부 실적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김진석 판로지원팀장은 “사회적기업 상품의 절반 이상이 돌봄, 문화, 공연 같은 무형의 서비스이지만 제품과 달리 이를 파는 쇼핑몰이 없다”며 “올해 이를 중개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공공구매 플랫폼 ‘세나비’(SENAVI)를 운영하며 사회적경제기업 제품과 공공기관 구매 담당자들을 연결해주고 있다.

공감마켓 정 매장.
공감마켓 정 매장.
많은 시도가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지난 11일 서울의 한 사회적경제기업 매장에는 디자인도 좋고 튼튼해 보이는 장지갑이 진열돼 있었다. 하지만 가격이 10만원 가까운 이 지갑은 투명비닐로 포장돼 팔리고 있었다. 선물용으로는 가치가 떨어지지만, 비용 문제 등으로 인해 개선이 더디다고 한다. 연간 30만원인 유지비가 부담스러워 바코드를 부착하지 않은 채 출시되는 사회적경제 제품도 있다고 한다. 다양한 협업과 적절한 공공의 지원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철종 ‘함께 일하는 세상’ 대표는 “사회적경제 제품의 유통에서 ‘착한 것’은 플러스알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품질과 서비스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얘기다. “공공의 지원을 통한 판로개척은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지속되기 어렵다”고 강조하는 장승권 성공회대 교수(유통정보학)는 “사회적기업이 협동을 통해 자조 노력을 해야 한다”며 “협력은 실제는 무척 힘든 일이어서, 작더라도 협력의 성공사례를 쌓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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