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성명에서 ‘점진적 금리인상’이란 문구를 삭제했다. 글로벌 경제 하강 우려에 미국도 긴축 속도조절을 공식화한 셈인데, 경기 둔화를 막기 위한 각국 정부의 정책 여력이 넓어질 전망이다.
연준은 29~30일(현지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열어 정책금리를 현 2.25~2.5%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금리 동결은 시장에서 예상됐던 바였고, 향후 정책방향 수정이 관심을 모았다. 연준은 회의 뒤 내놓은 성명에서 “세계경제 및 금융의 전개와 낮은 물가상승 압력을 고려해 연방기금 금리 목표 범위를 조정할 때 인내심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 ‘추가적·점진적인 금리 인상’ ‘경제전망 리스크는 대체로 균형’이란 문구를 뺐다. <뉴욕 타임스>(NYT)는 “연준이 금리 인상의 중단을 시사했다”고 평가했고 <월스트리트 저널>(WSJ)도 “금리 인상 중단의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고 전했다.
금리인상과 더불어 양대 긴축정책으로 손꼽히는 보유자산 축소(채권 매각을 통한 시중자금 흡수)와 관련해서도 “기존의 가이던스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뒤 채권을 매입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다가 2017년 10월부터 자산규모 축소에 나서 시중 자금을 회수하고 있었는데, 속도 완화 내지는 중단 방침을 밝힌 것이다.
지난해 네차례 금리를 인상하며 긴축 속도를 내오던 미 연준의 정책 변화는 미-중 무역갈등,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으로 글로벌 경제 하강 우려가 커진 데 따른 것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미-중 무역전쟁, 브렉시트, 미 연방정부 셧다운 등을 언급하며 “이런 환경에서 우리는 경기전망 평가에 있어 인내심을 가짐으로써 경제를 가장 잘 지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연준은 경기상황을 평가하는 수식어도 지난해 12월 ‘강한’(strong)에서 이번엔 ‘탄탄한’(solid)으로 바꿨다.
미 연준의 태도 변화에 30일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1.77%, 스탠더드앤푸어스500지수는 1.55% 올랐다. 채권시장도 반색했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2.69%로 전날보다 0.02%포인트 하락했고 독일 국채 10년물은 0.19%, 영국 국채 10년물은 1.25%로 각각 0.01%포인트씩 내렸다. 특히 미국 통화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국 국채 2년물 금리는 2.51%로 10년물 금리보다 큰 폭인 0.06%포인트 낮아졌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31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시장이 생각했던 것보다 (미 연준) 통화정책의 스탠스가 조금 더 더비시(비둘기파·완화적)했다”며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으니까 연준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 아닌가 싶고, 더비시한 입장이 금융시장 안정에는 도움이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예상 밖으로 미 연준이 완화적 통화 기조로 선회하면서 글로벌 경제 내 긴축 리스크가 크게 해소될 공산이 높아졌다”며 “경기부양을 위한 각국의 정책이 한층 강화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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