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을 맡고 있는 이상훈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장이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시복지재단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이상훈 위원(변호사)은 6일 “‘프록시 파이트’(위임장 대결)를 통해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이사 재선임을 막는다면 배임·횡령 등 불법 비리를 저지른 재벌총수에 대해 경영자로서 주총에서 직접 책임을 묻는 첫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의지를 밝혔음에도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이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데 대해 “대통령의 정치철학이 부처까지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프록시 파이트’를 선언한 이유는?
“국민연금이 최근 3년간, 조 회장이 너무 많은 계열사 이사직을 맡아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계속 반대표를 던졌지만 실패했다. 국민연금이 소극적으로 반대 의결권만 행사하고 다른 주주나 의결권 자문기관을 설득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에 대해 경영참여형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해, 개인 자격이라도 주주들의 반대표를 적극 모아서 조 회장의 연임을 막으려고 한다. 다만 절차의 공정성을 위해 수탁자전문위가 대한항공 주총 의결권을 결정하는 회의에는 불참할 생각이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한진칼의 경우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의 하나인 정관 변경 제안(불법행위자의 이사 자격 제한)을 하기로 결정했다.
“주주권 행사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다. 하지만 정관 개정은 주총 참석자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필요로 하는 특별결의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통과 가능성은 없다.”
―문 대통령이 최근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 의지를 천명했는데도, 복지부와 국민연금이 소극적인 이유는?
“수탁자전문위의 주주권행사 분과위원 9명 중에서 정부 추천위원 3명이 모두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에 반대했다. 복지부는 스튜어드십 코드 반대론자를 위원장으로 추천한 뒤 위원장으로 추대했다. 복지부의 소극적 태도는 분명 문제다. 또 대한항공에 대해 경영참여형 주주권을 행사하면 마치 100억원이 넘는 단기매매차익을 반환해야 하는 것처럼 과장 보고를 했다. 국민연금은 장기투자자이기 때문에 6개월간 주식매매를 하지 않으면 단기매매차익 반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조 회장의 대한항공 이사 연임을 저지하려면 정관상 주총 참석자의 3분의 1 이상이 국민연금과 함께해야 하는데, 프록시 파이트의 전망은?
“주총 참석률을 70%로 가정할 때 조 회장의 이사 재선임을 막으려면 국민연금 지분 11.7% 외에 11.6%의 추가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조 회장의 우호지분(33.35%)과 국민연금 지분 외에 나머지는 외국인 지분 20.61%와 내국인 지분 34.34%다. 조 회장 쪽의 숨은 우호지분이 없고, 주총만 공정하게 진행되면 해볼 만한 싸움이 될 것이다.”
―외국인 주주에게는 세계적인 의결권 자문기관인 아이에스에스(ISS) 등의 의견이 중요할 것 같다.
“전례로 볼 때 아이에스에스 등은 (불법 비리를 저지른) 조 회장의 이사 재선임에 반대할 것이다.” ―경총 등 경제계는 기업 경영권 간섭을 이유로 주주권 행사에 반대한다.
“기업 경영 간섭이 아니라 위법한 경영을 감시하는 것이다.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높게 평가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대로 행사하는 것이 세계적 흐름이다. 한국 경제의 경쟁력 확보에도, 회사 가치를 증진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국민연금이 정부의 입김 아래 있다는 지적이 많은데.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던 박근혜 정부 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해 독립성이 무너졌다. 국민연금의 독립성은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담보되는 게 아니라, 별개 차원에서 계속 노력해야 할 과제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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