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국제승원팀장이 승무원들에게 의결권 위임을 요청하며 보낸 메일
대한항공이 팀장급 간부를 통해 직원들에게 오는 27일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이사선임 안건을 관철하기 위해 주식 의결권을 위임해달라고 요청하는 메일을 일제히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의결권 위임을 사실상 강요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11일 참여연대과 대한항공 직원 노조의 말을 종합하면, 대한항공 국제승원팀장은 최근 일반 승무원들에게 ‘(중요) 국제승원팀에서 안내 말씀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을 보내 “주총에서 의결권 방어를 위해 직원 여러분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여러분과 가족이 가지고 있는 대한항공 주식의 의결권을 위임받아 회사에 우호적인 의결권 행사를 하려 한다”고 밝혔다. 국제승원팀장은 이어 “귀하와 가족이 보유한 주식의 의결권을 대리행사하고자 하는 분은 본인 소유주식에 대한 관련 위임장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국제승원팀은 국제선 비행기에서 근무하는 승무원들을 관리하는 부서다.
이는 대한항공 주총을 앞두고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이상훈 변호사(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 위원)가 조 회장의 대한항공 이사 재선임을 막기 위해 주주들의 의결권을 위임받아 표 대결을 벌이는 ‘프락시 파이트’(위임장 대결)에 나선 데 대항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제승원팀장은 또 위임장 관련 서류 접수처로 브리핑룸의 당직 승원팀장 자리, IOC 당직 또는 소속 승원팀장 자리, KOC 당직 근무자 자리 등 회사 내 공개적인 장소를 구체적으로 지정해, 의결권 위임 요청이 회사의 지시에 따른 것임을 짐작하게 했다.
참여연대는 “자본시장법상 회사나 주주 등이 다른 주주들을 상대로 의결권 위임을 권유할 수는 있지만, 직원들에게 의결권 위임을 사실상 강요하는 것은 위법”이라며 “회사와 담당 팀장을 강요죄로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대한항공 일부 부서의 경우 담당 임원이 직접 직원들을 상대로 의결권 위임장을 받고 있다는 제보도 받았다고 덧붙였다.
대한항공은 이에 대해 “회사가 주주총회를 앞두고 자본시장법에 따라 일부 직원주주에게 적법한 방식으로 의결권 위임을 권유한 것”이라며 “강요 사항은 없고, 직원 주주는 본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의결권 위임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객실 승무원 주주의 경우 상당 시간을 항공기 내 혹은 해외에서 체류하는 점을 감안해, 의결권 위임 권유 목적을 밝히고 본인이 희망할 경우 위임장을 수령할 수 있는 장소와 절차를 안내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진칼 2대 주주인 행동주의 사모펀드 케이씨지아이(KCGI)는 이날 “한진칼이 케이씨지아이의 주주제안을 막기 위해 이사회 소집을 미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주총회를 소집하기 위해선 이사회에서 주총 일시·장소·안건 등을 결의해야 하는데, 한진칼이 케이씨지아이의 주주제안을 주총 안건으로 결의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케이씨지아이는 “한진칼 주주들은 지금까지도 정기주주총회에서 논의될 안건조차 파악할 수 없는 처지”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진칼 관계자는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므로 2심 결과가 나온 뒤 이사회 소집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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