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과 대한항공조종사노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등 노조와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이 25일 오전 서울 충정로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앞에서 기자회견 열어 대한항공 조양회 회장의 이사 연임에 반대하는 쪽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것을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 3개 연금공단에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오는 27일 열리는 대한항공 주주총회 안건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이사 재선임안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놓고 국민연금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전문위)가 논의를 했지만 찬반이 엇갈려 결정을 하루 연기하는 파행이 빚어졌다. 국민연금이 배임·횡령 혐의로 재판 중인 조 회장의 이사 재선임에 찬성할 경우 주주권 행사 강화를 위한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 원칙) 도입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비판이 높다.
국민연금 전문위는 25일 오후 서울 강남 신사동 사옥에서 대한항공 주총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논의한 결과, 최대 관심사인 조 회장의 이사 재선임에 대한 반대 4명, 찬성 2명, 기권·중립 2명으로 의견이 맞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8명의 전문위원 중에서 김경률 참여연대 회계사(참여연대 추천), 김우진 서울대 교수(정부 추천), 이시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정부 추천), 김우창 카이스트 교수(한국노총 추천) 등 4명은 조 회장의 이사 재선임에 반대했다. 반면 박상수 경희대 교수(정부 추천)와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경총 추천)는 찬성했고, 권종호 건국대 교수(대한상의 추천)와 조승호 대주회계법인 회계사(공인회계사회 추천)는 기권 내지 중립 입장을 보였다.
전문위는 이상훈 변호사(민주노총 추천)가 이날 뒤늦게 회의에 참석함에 따라 26일 오후 회의를 다시 열어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또 조 회장의 이사 재선임 반대를 위해 주주들의 의결권을 위임받는 ‘프록시 파이트’(위임장 대결)를 선언한 이 변호사의 자격 여부에 대해 유권해석을 내리기로 했다. 김경률 회계사, 이상훈 변호사를 포함한 3명은 전문위가 조 회장 이사 재선임 안건에 반대하지 않으면, 위원 자리를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조 회장의 이사 재선임에 반대한 위원들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취지를 보면 반대는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활동에 관한 지침’ 30조(이사 선임)를 보면, 기업가치의 훼손 내지 주주 권익의 침해 이력이 있는 이사후보에 대해서는 반대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조 회장은 2003~2018년 대한항공이 납품업체들로부터 항공기 장비와 기내 면세품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개인 소유회사인 트리온무역을 끼워 넣어 중개 수수료 명목으로 이른바 ‘통행세’ 196억원을 부당하게 챙기는 등 회사에 총 274억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배임·횡령)로 기소돼 1심 재판 중이다.
또 대다수 국내외 의결권자문사들이 조 회장의 이사 재선임 안건에 반대를 권고한 것도 근거로 제시됐다. 국민연금의 의결권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은 이날 “사익편취를 위해 대한항공 등 계열사의 기업가치를 훼손했다는 기소내용을 고려하면, 조양호 후보가 회사의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 목표로 사내이사로서 충실의무를 다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반대를 권고했다. 이에 앞서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인 아이에스에스(ISS), 국내 의결권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와 좋은기업지배연구소도 모두 반대를 권고했다.
국민연금이 조 회장의 이사 재선임에 찬성하면 문재인 정부의 스튜어드십코드 활성화 방침 후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경률 전문위원은 “문 대통령은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통한 주주권행사 강화를 대선공약으로 제시했고, 지난 1월 청와대 회의에서도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 탈법과 위법에 대해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조 회장의 이사 재선임에 찬성한 위원들은 의결권 행사는 법원의 1심 판결 결과가 나온 뒤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조 회장이 2015년 2월~2017년 7월에 장녀인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 자신과 관련된 형사사건에 대한 변호사 비용 17억원을 회사 자금에서 빼돌려 지출한 횡령 혐의에 대해 이미 잘못을 인정한 것을 간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1심 재판 결과 전이라도 주주가치 훼손 행위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이 인정되는 경우 검찰 기소 시점부터 의결권을 행사해 왔다. 대한항공은 이에 대해 “변호사 비용 횡령 혐의는 다툼이 있으나, 법원 재판절차와는 별도로 전액 개인 비용으로 상환했다”고 말을 바꿨다.
국민연금이 찬성하면 주총에서 이사 재선임이 불투명해 보이던 조 회장이 기사회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조 회장이 재선임되려면 대한항공 정관상 주총 출석주주의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주총에 70%의 주주가 참석한다고 가정하면, 조 회장은 연임을 위해 46.7% 이상의 지지가 필요한데, 조 회장 일가와 한진 계열사 등 우호세력의 보유 지분 33.34%와 국민연금 지분 11.7%를 합치면 이에 거의 육박한다.
곽정수 선임기자,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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