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티(KT)·엘지(LG)·에스케이(SK) 등 재벌 대기업들이 수년간 1600억원대에 이르는 정부입찰에서 담합을 한 사실이 적발됐다. 특히 케이티는 검찰에 고발되면서 인터넷전문은행 케이(K)뱅크의 대주주를 맡기는 사실상 어렵게 됐다는 전망이 나온다.
공정위원회는 25일 케이티, 엘지유플러스, 에스케이브로드밴드, 세종텔레콤 등 4개사를 공정거래법상 담합 혐의로 적발하고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33억2700만원을 부과하고 케이티는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정위 조사결과, 이들 4개사는 2015~2017년 조달청이 발주한 공공분야 전용회선사업과 관련한 공공입찰 12건에서 사전에 낙찰 예정업체를 정하고 나머지 업체들은 들러리로 참여하는 등의 수법으로 짬짜미했다. 담합을 통해 입찰에 불참해 아예 유찰시킨 뒤 미리 정한 낙찰예정업체가 수의계약으로 따낼 수 있도록 꾸민 경우도 있었다. 전용회선이란 전용계약에 의해 가입자가 원하는 특정지점을 연결하고 독점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신속성·안전성이 뛰어난 전기통신회선이다.
낙찰예정업체는 대체로 정부가 정한 사업비 대비 96~99%의 높은 낙찰률로 사업권을 따내, 정부 예산과 세금을 낭비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들 업체들이 3년간 담합한 국가정보통신망 백본회선 구축사업 등 공공입찰 12건의 총 계약금액은 1600억원이 넘는다.
또 낙찰을 받은 업체는 들러리를 서주거나 유찰을 도와준 업체로부터 해당 사업에 필요한 회선을 빌리는 계약을 맺었다. 그 뒤 실제 회선임대 여부와 상관없이 임대료 명목으로 132억원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국가정보통신망 백본회선 구축사업 낙찰사인 케이티는, 담합 의심을 피하면서 대가를 공유하기 위해, 엘지유플러스와 회선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엘지유플러스가 다시 에스케이브로드밴드와 회선 임차계약을 맺는 치밀한 방식까지 동원했다. 공정위는 공공사업 입찰담합 제재 의결서를 법무부에 통보해 발주기관이 민사소송을 통한 부당이득 환수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이날 공정위가 케이티를 검찰에 고발하기로 하면서, 금융당국은 케이티의 케이뱅크에 대한 한도초과보유주주(대주주) 승인심사를 계속 중단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검찰 수사와 재판결과, 벌금형의 수준이 결정될 때까지 심사를 계속 중단한다”고 말했다. 검찰이 기소해 재판으로 넘어간다면 결과가 확정되기까지 최소 2~3년은 걸리기 때문에 케이티가 사실상 케이뱅크 대주주를 하기 어렵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12일 케이티는 케이뱅크 지분을 현재 10%에서 34%로 늘리기 위해 금융위에 한도초과보유승인 신청을 했지만,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게 되면서 지난 17일 금융위 심사가 중단됐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요건상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으면 5년간 은행 대주주를 할 수 없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곽정수 선임기자,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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