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공동주최한 ‘문재인 정부 2년, 촛불 시민항쟁 이후 시민의 삶’ 토론회가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김미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주하 동국대 행정학과 교수, 김성욱 호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이동석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양중 <한겨레> 의료전문기자,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통계센터장, 윤홍식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16년 한겨울의 맹추위를 녹여낸 연인원 1700만명의 ‘촛불’ 이후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변했을까. 고되고 팍팍한 삶의 현장 구석구석엔 과연 희망의 빛줄기가 스며들고 있을까. 지난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2년, 촛불 시민항쟁 이후 시민의 삶’ 토론회는 문재인 정부 2년의 세월을 ‘시민의 관점’에서 되돌아보고 평가하는 자리였다. 참여연대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공동주최한 이날 행사에선 각 분야 전문 연구자뿐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이 참여해, 주로 보건·복지와 노동, 조세재정 등 사회경제정책 분야를 중심으로 발표와 토론이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눈에 띄는 개별적인 진전도 더러 있었으나, 전체적으론 정책 방향의 혼선을 넘어 개혁 후퇴의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며 “집권 3년 차를 맞는 지금이야말로 촛불 민심의 방향과 정권의 성패를 가를 중요한 분수령”이라고 입을 모았다.
■ 지난 2년의 성과와 한계
문재인 정부 2년 동안 진행된 사회경제 분야 개혁을 되돌아보면 ‘잘한 점’과 ‘아쉬운 점’이 공존했다. 소득보장 영역 가운데서도 기초연금은 정책 실행 속도가 비교적 빠른 편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기초연금을 25만원으로 올린 데 이어, 지난 4월부터는 절대빈곤층인 하위 20% 노인가구 기초연금을 5만원 추가 인상해 30만원으로 확대했다. 또한 지난달부터는 만 6살 미만의 아동에 대해 소득에 상관없이 월 10만원씩 아동수당이 지급되고 있다. 9월부터는 7살 미만의 모든 아동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정부는 아동수당 도입을 비롯한 기초연금 확대와 장애인연금 확대 등 이전소득 보강을 소득주도성장 3대 정책의 하나로 내세운 바 있다. 취약계층 소득보장을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원동력’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과거 정부가 산업 육성의 눈으로 다가선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국가 책임제를 분명히 못 박은 것도 나름의 성과다. 치매 국가 책임제, 사회서비스원 도입, 지역사회 통합돌봄 등이 대표적이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한 ‘문재인 케어’도 보건의료 분야의 성과로 꼽힌다.
하지만 한계와 과제 또한 뚜렷하다. 비수급 빈곤층 해소와 관련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첫손으로 꼽히는 과제다. 앞서 지난달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2020년도에 수립하는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21~2023년)에 부양의무자 기준을 전면 폐지하는 내용을 담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소득인정액 기준도 문제다. 김도희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올랐고 국토교통부가 공시지가 현실화를 추진하는 마당에 주거용 재산 공제금액을 대도시의 경우에도 1억원으로 책정한 건 잘못”이라 지적했다. 김미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
최저생계비를 국민기초생활보장제의 선정기준으로 삼고 1인가구나 2인가구가 불이익을 입지 않도록 가구균등화 지수를 합리적으로 적용해 적정한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드러난 문제점도 적지 않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사회서비스원의 경우에도 자칫 현장의 혼선만 불러일으킬뿐더러 외려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여지가 남아 있다. 실례로 노인 돌봄 서비스만 하더라도 현재 장기요양보험뿐 아니라 노인돌봄종합서비스, 노인돌봄기본서비스, 노인재가복지서비스 등으로 ‘파편화’된 상태다. 김보영 영남대학교 지역및복지행정학과 교수는 “
정부가 공급한다고 해서 서비스의 공공성이 곧장 보장되는 게 아닌데, 독립채산제를 표방하는 사회서비스원은 지역의 사회서비스 책임 소재와 관련해 혼선만 키운다”며 “책임 있는 사회서비스를 위해선 광역단체와 기초자치단체, 읍면동의 역할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7일 참여연대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공동주최한 문재인 정부 2년 평가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집권 3년 차를 맞는 지금이야말로 촛불 민심의 방향과 정권의 성패를 가를 중요한 분수령”이라고 입을 모았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정부 출범 초기 ‘노동 존중 사회’와 ‘비정규직 제로’를 표방해 큰 기대를 모았던 노동정책의 경우엔 점차 실망감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16.4%)을 계기로 정부를 향한 경제계와 보수언론의 ‘공격’이 거세지고, 정부 역시 한 발짝 물러서는 듯한 모양새를 띠고 있어서다. 최근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무리한 추진으로 사회적 대화 분위기에 치명타를 안기기도 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에 대한 충분한 실증 데이터가 확보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후퇴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며 “변화와 개혁보다는 안정과 유지 쪽을 확실하게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개혁 드라이브 왜 속도 못 내나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에 힘이 실리지 않는 이유는 뭘까. 해답의 실마리는 ‘재정 건전성 신화’에서 한 걸음도 빠져나오지 못한 정부의 소극적 태도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2017년 출범 직후 정부가 내놓은 ‘2018~2022 총지출 소요 및 재원대책’에서 적극적 과세기반 강화 항목은 고작 17조원에 그쳤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감세 기조를 적극적으로 되돌리려는 의지가 애초부터 부족했던 셈이다. 기대를 모으고 출범한 재정개혁특위가 금융소득 과세 강화를 권고한 지 하루 만에 기획재정부의 반기로 힘을 잃은 게 상징적이다. 최근 들어선 자본이득 과세 강화 없이 거래세 인하나 가업상속공제 요건 완화를 추진하는 등 조세정의 후퇴 조짐이 더욱 뚜렷하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증세 없는 균형재정 원칙에 매달린데다 기재부의 과소 세수 추계로 지난 2년간 사실상 긴축재정을 편 셈”이라며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펴 최저임금 인상뿐 아니라 사회안전망 확충, 이전소득 보장 등 ‘소득주도성장 패키지’의 효과를 극대화했어야 했다”고 평가했다.
정책 방향의 모호함도 한몫했다. 서로 다른 방향의 정책이 버젓이 추진돼 혼선만 부추긴 사례도 수두룩하다. 문재인 케어와 의료민영화가 동시에 얼굴을 내민 보건의료 분야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해 의료공공성을 높이는 쪽에 힘을 실으면서도, 지난해 통과된 규제샌드박스 법안에 의료민영화 관련 내용을 대거 포함했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만으로 의료공공성이 확보될 것이라고 보는 건 극히 안이한 생각”이라며 “지난 2년간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공약 위반일뿐더러 (치적으로 내세운) 문재인 케어와도 모순된다”고 꼬집었다.
■ 앞으로 3년, 무엇을 해야 하나
촛불 민심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면 조세재정 원칙부터 서둘러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한국 경제가 맞닥뜨린 상황은 녹록지 않다. 고용률은 여전히 낮은 상태에 머물러 있고 최근 들어선 30~50대 남성 고용률 하락도 두드러진다. 2% 초중반대 성장률 전망이 잇따르는 배경이다. 최저임금 인상뿐 아니라 사회안전망 확충, 이전소득 보장 등 ‘소득주도성장 패키지’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좀 더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세은 교수는 “한국처럼 정부지출 규모가 적고 조세부담률이 현격히 낮은 상황에서는 단지 확장적 재정정책에 머무르지 말고 복지지출 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정부지출 규모를 영구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며 “중장기적으론 부가가치세 증세를 포함한 보편 증세와 사회복지세도 고려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 제기도 나왔다. 윤홍식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은 “진보 정부 10년과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등 지난 20년의 경험은 성장과 시장 중심의 체제를 손보지 않고 복지만 확대하는 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줬다”며 “문재인 정부의 성패는 과거와는 다른 대안적인 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연인원 1700만명이 참여한 촛불로 탄생한 정부의 ‘실패’는 결국 우리 사회 전체의 불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 정부를 탓하는 데 그치지 말고 노동계와 시민사회 모두를 아우르는 공동책임과 참여가 더없이 절실하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노동정책은 어느 한쪽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 노사정 모두의 실력”이라며 “하향 평준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노동정책의 경우에도 정부 정책 후퇴 하나만으로 설명하긴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도 “기대가 실망감으로 빠르게 변했던 과거 진보 정부 10년의 데자뷔(기시감)가 떠오른다”며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는 만큼 정부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가 힘과 지혜를 모을 때”라고 말했다.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morg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