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적용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87% 오른 시간당 8590원으로 결정됐다.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실 모니터 화면에 투표 결과가 보인다. 연합뉴스
내년에 적용될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87% 오른 시간당 8590원으로 12일 결정됐다. 10년 만에 가장 낮은 인상률이다. ‘과속인상 탓에 후유증이 심각하다’는 비판이 힘을 얻은 결과다. 최저임금 속도조절이 현실화하면서 문재인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22년까지도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은 쉽지 않게 됐다.
최저임금은 앞서 지난 2년 동안 29.1% 올랐다. 높은 인상률에서 볼 수 있듯이 최저임금은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맨 앞에서 이끌었다. 사실상 최저임금의 ‘단독 질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싼 공방과 논란이 최저임금에 집중됐던 배경이다. 급기야 임금이 오르고 소비가 늘어 소득주도성장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자평하는 정부와 여당조차 최저임금 속도조절을 주문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까지 벌어졌다. 현재의 최저임금 수준이 ‘지급능력’을 넘어선다고 주장하는 시장의 저항에 두 손을 든 모양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구조와 전략의 문제가 중첩돼 있다. 사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최저임금은 4년 동안 꾸준히 7~8%씩 올랐다. 경상성장률이나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웃도는 인상률이다. 2017년 최저임금은 중위임금(근로자 임금 중간값)의 48.4% 수준까지 도달했다. 지난 2년 동안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 비율은 올해 60% 초중반대까지 상승한 것으로 추산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특히 올해 최저임금영향률은 25%까지 치솟았다. 전체 임금근로자 4명 가운데 1명(506만2천명)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임금을 올려 받아야 할 대상자라는 얘기다. 이 비율은 오이시디 주요국에 비해 2~3배 높다. 역시 2년 연속 두자릿수 인상률로 최저임금을 올렸던 노무현 정부 초기엔 각각 7.6%와 8.8%에 불과했다.
최저임금영향률이 이처럼 높아진 것은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빨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임금 근로자의 비중이 줄어들지 않는 구조적 요인에도 원인이 있다. 우리 경제의 부가가치 생산과 분배 구조의 양극화에서 비롯되는 문제다. 한국생산성본부 자료를 보면, 절대다수의 임금근로자가 속해 있는 국내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은 대기업의 28.2%에 불과하다. 대-중기 노동생산성 격차는 세계 최고다. 서비스업의 경우 저임금 근로자가 집중돼 있는 5인 미만 사업체가 전체의 80%를 넘는데, 이들 업체의 노동생산성은 서비스 대기업의 17.3% 수준이다. 제조업에선 종사자 10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체의 노동생산성조차 대기업의 26.6%밖에 안 된다. 이는 고스란히 사업체의 지급능력 차이에 따른 임금격차와 저임금 고착화로 이어진다.
이런 구조적 제약에 주목하면 표준생계비 수준인 ‘시급 1만원’을 온전히 ‘시장임금’을 통해 단기간에 달성하겠다는 전략의 현실 적합성을 따져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또 최저임금 인상에 지나치게 기댄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방향성에 의문을 품게 된다. 구조조정이나 산업정책, 대-중기 공정거래 관행 확립 등을 통해 적정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노력이나 재정을 동원한 이전소득의 대폭 확대 같은 정책 수단들이 좀 더 비중 있게 고민되고 앞서 실행됐어야 했다.
정책 전환에는 비용이 든다. 그래서 비용 분담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가 중요하다. 최저임금이 주도하는 소득주도성장은 시장에서의 1차 분배 개선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자영업자와 영세사업체가 너무 많은 우리 경제구조 탓에 지급능력이 한계에 처한 이들에게 과도한 전환비용이 부과되는 방식이다. 임금을 지급하는 고용주라는 이유로 한달에 이삼백 벌이도 힘겨운 ‘사장님’들이 부담을 다 떠안고, 억대 연봉을 받는 고소득 근로자나 대기업 자본은 뒷짐 지고 있는 현실은 소득주도성장 전략의 역설적인 모습이다.
애초 ‘임금’주도성장을 ‘소득’주도성장으로 바꿔 작명한 취지를 살리려면, 1차 분배 개선뿐만 아니라 가처분소득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정책 조합과 정책 간 힘 조절이 필요하다. 최저임금위원회의 이번 결정으로 최저임금이 소득주도성장을 이끄는 동력은 이전보다 약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소득주도성장을 추동할 새롭고 다양한 동력원을 내세우기 위한 정부의 고민이 좀 더 깊어져야 할 때다.
김수헌 경제팀장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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