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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일본에선 아베에 공산주의자냐고 농담”

등록 2019-08-26 13:05수정 2019-08-27 09:46

박상준 일본 와세다대 교수 인터뷰
임금인상·노동시간 단축 정책 ‘소주성’ 흡사
양극화 개선·고용창출 위해 좌파정책 차용
경제회복 1등 공신 기업…과감한 구조조정
경영위기 기업의 대량감원에도 노사 공감대
아베 수출규제는 경제에 대한 자신감 바탕
“정작 한국은 일본경제 잘 모른다” 쓴소리
일본 부활 비결·교훈 담은 ‘불황탈출’ 출간
박상준 일본 와세다대 교수.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박상준 일본 와세다대 교수.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일본에서는 아베 총리에 대해 ‘공산주의자냐’라는 농담이 있다. 아베 총리는 정치적으로 우파지만, 경제정책은 노동시간 단축, 기업 임금인상 독려, 정규직-비정규직 간 ‘동일노동 동일임금’ 적용,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똑 닮았다.”

한일경제 전문가인 박상준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지난 22일 서울 남대문 대한상의에서 가진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아베의 수출규제 배경에는 일본경제 부활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작용했는데 정작 한국은 일본경제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박 교수는 최근 일본이 장기불황에서 벗어난 비결과 한국에 주는 교훈을 담은 신간 <불황탈출(사진)>을 출간했다. 박 교수는 “일본경제 회복의 1등 공신은 기업”이라며 “경쟁력을 상실한 사업의 과감한 정리와 미래 성장산업 집중 등 구조조정이 주효했다”면서 “일본 경영자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대규모 감원을 해도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고 노동자도 ‘회사가 먼저 살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어 노사갈등이 적다”고 강조했다. 또 “일본은 한국보다 성장률이 낮지만 고용이 안정돼 있다”면서 “중소기업을 살려서 고용을 창출하고, 고참 인력의 직장 내 재배치를 통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일본은 첨단산업 박람회에 인파가 몰리는데, 한국은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인산인해를 이룬다”면서 “2019년 한국에서 20년 전인 1999년 일본과 유사한 두려움이 보인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1999년부터 일본 대학에서 20년째 연구와 후학 양성을 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한일 경제전쟁과 관련해 지난 7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수출규제는 일본의 명백한 잘못이다. 우리 정부에도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일본을 이기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아베의 수출규제 배경에는 자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고 분석했는데.

=아베가 일본경제의 회복에 도취되어 무역분쟁을 일으킨 것이다. 수출규제는 일본에도 타격을 주기 때문에 경제가 좋지 않았으면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투자위축 등 일부 경제지표의 악화, 미·중 무역갈등 장기화, 10월 소비세 인상의 악영향 가능성이 변수가 되고 있다.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흔들리면, 아베가 한국과의 타협·협상을 모색할 것이다.

-경제에서 고용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기업들이 구인경쟁을 벌일 정도로 사실상 완전고용을 달성했다고 하는데.

=일본 실업률은 2.3%로 한국(3.9%)보다 훨씬 낮다. 청년실업률도 5%대로 한국의 절반이다. 요즘 일본 대학생들은 취업 걱정을 안한다. 한국으로서는 너무 부러운 일이다.

-일본도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등 고용의 질이 나빠졌다는 주장도 있다.

=오해다. 2013~2018년 6년간 생산가능인구(15~64살)가 367만명 줄었는데도, 정규직은 183만명, 비정규직은 214만명 모두 늘었다. 20대 인구는 같은 기간 60만명 줄었는데, 정규직은 33만명 늘고, 비정규직은 8만명 줄었다.

-한국도 청년인구가 줄면 청년실업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까?

=잘못된 생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분석에 따르면 청년인구 비중이 줄면 청년실업률이 오히려 높아진다. 고령화로 인해 경제 활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고용이 좋아지려면 경제와 기업실적이 좋아져야 한다.

-일본은 성장률이 1%대로 한국(3% 안팎)보다 낮지만, 고용사정이 좋다. 한국에서는 고용부진이 성장률 저하 때문이라는 주장이 많다.

=독일도 성장률이 한국보다 낮지만 고용은 좋다. 고용에는 성장률 외에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일례로 한국은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가 크다보니 청년들이 대기업에만 몰린다. 반면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한다. 반면 일본의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는 10~20% 정도에 불과해,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찾는다. 한국도 격차를 줄여서,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찾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노력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줘야 한다. 또 고임금을 받는 대기업 노동자들이 양보하고, 대기업도 임금총액을 늘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본의 직장 내 재배치도 강조했는데.

=노동자가 나이가 들면 생산성은 떨어지는데 임금은 계속 높아진다. 이런 불일치 문제를 해결하려면 적절한 인력재배치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임금도 조정해야 한다. 일본은 이 점에서 한국보다 강점이 있다. 한국은 노사불신이 심해 재배치가 어렵다. 경영자가 리더쉽을 발휘해야 하고, 노동자도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일본의 고용 개선은 기업실적 회복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엘지에 역전당했던 일본 기업들이 어떻게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부활했는지 궁금하다.

=일본경제의 회복에는 양적완화를 통한 수출 경쟁력 제고, 장기 성장전략을 통한 미래성장산업 육성 등의 아베노믹스가 주효했다. 하지만 1등 공신은 기업이다. 일본 기업은 불황에 빠진 국내를 떠나 해외시장에 도전했다. 또 연구개발에 집중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는 4.2%로 일본의 3%대보다 높지만 기업 연구개발비를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세계 연구개발투자 상위 1천대 기업을 보면 한국은 34개지만, 일본은 161개로 5배다. 한국 34개사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는 평균 3.4%지만, 일본 161개사는 4.3%로 더 높다.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한국 기업의 연구개발비 비중은 2.4%로 더 떨어진다. 또 과거 성공에 안주하다가 몰락한 것을 교훈삼아, 한국·중국에 밀려 경쟁력을 잃은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고 미래성장산업에 집중했다. 삼성·엘지에 뒤쳐졌던 소니는 게임과 엔터테인먼트에서 독보적 위치를 확보했고, 히타치는 디지털솔루션 사업에서 최고다. 일본 기업은 한국에 반도체·휴대폰·전자산업을 뺏겼지만, 로봇·인공지능·자율주행·센서 등 미래성장산업에서 주도권을 장악했다.

-일본 기업의 적극적인 구조조정도 강조했다. 한국은 경영난을 겪는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려해도 노사대립이 심하다.

=일본항공(JAL)은 2010년 파산에 직면했다.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전 교세라 회장이 영입됐다. 이나모리는 4만8천명의 직원 중에서 1만6천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냈다. 하지만 회사 안에서나, 사회적으로 비난은 없었다. 일본항공은 2년만에 회생했다. 구조조정을 미뤘던 전임 사장은 직원들에게는 인기가 높았지만, 회사를 위기에 빠뜨렸다. 이나모리는 이를 두고 “소선은 대악이 될 수 있고, 대선은 비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히타치도 2010년 본격 개혁에 나서면서 7천명을 감원했다. 경영진은 ‘15년 전 처음 위기가 발생했을 때 구조조정을 신속히 했다면 훨씬 적은 희생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고 반성했다. 일본은 구조조정에 대한 노사간 인식의 격차가 한국보다 작다. 경영자들은 구조조정은 어쩔 수 없지만, 직원들에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자는 자신이 희생되더라도 회사가 어려워졌으니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인다. 한국에서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되거나 회사경영이 매우 어려운 회사가 구조조정을 놓고 심한 노사대립을 겪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일본의 경영자는 대부분 전문경영인 출신인데.

=일본에서 기업을 살린 사람들은 대부분 전문경영인이다. 이들은 구조조정을 할 때도 후배인 직원들과 교감을 이루기 쉽다. 한국은 ‘오너’라고 불리는 총수들이 직원들과 쉽게 교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에서는 오너경영이 전문경영인 경영보다 유리하다는 주장이 있는데, 일본을 보면 꼭 그렇지 않다.

-도요타자동차의 아키오 사장은 창업주의 손자다. 도요타의 위기 극복에 큰 역할을 했는데.

=일본에서는 창업자 후손이 경영하는 게 드문데, 도요타는 예외적이다. 아키오 사장도 처음 입사할 때는 부친이 반대했다. 아키오는 28살 때 남들처럼 원서를 내고 들어왔다. 처음 임원이 된 것이 44살이고, 사장은 53살에 됐다. 일본의 평균보다 약간 빠르지만 큰 차이 없다. 처음부터 최고경영자로 예정된 것이 아니고 내부경쟁을 뚫고 올라갔다. 한국의 재벌 2·3세들이 초고속승진을 하고, 40살도 안돼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르는 것과 큰 차이다. 이나모리 회장도 딸 셋이 있었는데 “경영자의 능력은 타고난 것이 아니다”면서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았다.

-2019년 한국의 모습에서 1990년대 일본을 다시 본다고 걱정했는데.

=현재 한국 사회는 일종의 두려움에 빠져있는 것같다. 고용이 안좋고 앞으로도 나아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인구도 줄고, 기업들도 미래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 20년 전인 1999년 일본에 처음 도착했을 때 분위기가 딱 그랬다. 한국은 기존 산업에서 중국의 거센 추격을 당하고 있다. 미래성장산업에서는 일본을 추격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기업의 부활은 고용 개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한국경제의 중심인 대기업은 성장해도 고용하지 않는 이른바 ‘고용없는 성장’을 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기업이 어려우면 고용없는 성장은 불가피하다. 기업이 성장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한국 기업이 일본처럼 해외로 진출하는 것을 욕해서는 안된다. 기업들도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고용확대에 노력해야 한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국민이 분노하고 정부가 지원책을 내놓았다. 삼성·에스케이는 큰 빚을 졌다. 대기업이 임금총액을 꾸준히 늘리고, 거래 중소기업의 동반성장과 상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보수야당과 기업들은 경영부담을 이유로 포기를 요구한다. 반면 노조는 정부의 속도조절 등 보완책에 대해 개혁 후퇴라며 반발한다.

=한국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아베의 정책과 매우 흡사하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확대하고, 기업들에 임금인상을 독려한다.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 임금도 똑같이 주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강조하고,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 고용안정성을 높이라고 요구한다. 일본 안에서는 이런 아베를 두고 “공산주의자냐”는 농담까지 나온다. 아베는 정치적으로는 우파지만, 경제적으로는 좌파정책을 차용했다. 일본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출산율이 떨어지고, 소비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이 있다면?

=정책의 유연성이다. 정책실패를 보완하는데 보다 유연해져야 한다. 한국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중소기업이 어려워지고, 고용 감소 등 일부 부작용이 나타났다. 반면 일본은 최저임금을 점진적으로 올리고 있다. 경제정책은 끊임없이 수정과 손질이 필요하다. 한국은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정치권에서 책임공방이 벌어진다. 모든 것을 대통령 탓으로 돌리고, 정작 경제 시스템은 개선하지 않는다. 일본은 장기불황 때에도 그런 얘기가 없었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때도 오바마 정부는 전임 부시 정부를 탓하지 않고, 민주·공화당이 공동조사단을 꾸려 대책을 마련했다. 양극화 심화, 대-중소기업 간 격차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정 정부만의 책임이 아니다. 일본 수출규제 문제도 책임만 따질 게 아니라, 공동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불안을 이유로 분양가상한제 등 추가규제를 검토하고 있다.

=일본은 장기불황을 겪으며 ‘부동산 불패신화’가 깨졌다. 하지만 부동산값이 다시 회복되면서 ‘부동산 필패 신화’도 깨졌다. 부동산은 경기상황, 인구변화에 따라 오를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시장의 돈이 기술·산업 등 생산적인 분야 대신 부동산으로만 몰리는 것은 문제다. 일본은 첨단산업 전시장마다 활기를 띤다. 대신 한국은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인산인해를 이룬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중요한 이유다. 일본도 부동산 양도차익에 대해서는 중과세한다. 1990년대 이후 부동산 폭락과 2000년대 중반 이후 회복세를 거치면서도 보유세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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