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때 개선되는 듯했던 사법부의 ‘재벌총수 봐주기 판결’이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부활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29일 오후로 예정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및 횡령사건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재벌 봐주기 판결의 부활과 종식을 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29일 <한겨레>가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등 역대 정부에서 재벌총수가 유죄판결을 받은 12개 주요 사건의 판결을 분석한 결과,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 때는 재벌총수들에게 이른바 ‘3·5법칙’(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이 예외없이 적용되어 ‘재벌 봐주기’ 현상이 뚜렷했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조양호 한진 회장은 탈세 혐의로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됐다. 노무현 정부 때는 2003년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과 2006년 박용성 두산 회장이 각각 배임과 횡령 혐의로 역시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됐다. 이명박 정부 때는 2008년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2009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역시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됐다. 재벌총수의 혐의나 죄질과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3·5법칙’이 적용된 게 특징이다.
‘재벌 봐주기 판결’ 관행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은 박근혜 정부 때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배임 혐의로 역시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됐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은 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이재현 씨제이(CJ) 회장도 횡령 사건에서 2년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는데, 건강문제로 형 집행이 정지됐다.
하지만 재벌 봐주기 판결 관행은 문재인 정부 들어 부활 조짐이 나타났다. 조현준 효성 회장은 2018년 횡령 및 조세포탈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1년6개월과 집행유예 3년이 선고돼 풀려났다. 신동빈 롯데 회장도 2018년 국정농단사태 관련 뇌물공여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2년과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뇌물공여 혐의로 2017년 1심에서는 징역 5년의 실형이 선고됐으나, 지난해 8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이 선고돼 풀려났다. 이들의 집행유예 기간은 3~4년으로 과거 정부 때의 5년보다 오히려 줄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실형선고를 받은 재벌총수도 있다. 이호진 전 태광 회장은 지난 6월 배임·횡령 등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이 확정됐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이른바 ‘황제보석’ 사태로 여론이 크게 악화된 영향이 컸다고 볼 수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사법부의 재벌총수 봐주기 판결이 재연되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김남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부회장은 “박근혜 정부 들어 재벌 봐주기 판결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높아지면서 사법부가 일부 실형을 선고했으나 문재인 정부 들어 사법부가 다시 과거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며 “사법부가 아직 총수를 구속하면 재벌이 위기에 빠지고, 경제가 흔들린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향후 항소심(파기환송 판결 경우) 선고가 재벌 봐주기의 향배를 결정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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