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3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거시정책협의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8월 소비자물가지수가 1년 전보다 낮아져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물가’가 현실화했지만, 물가관리 당국인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한목소리로 디플레이션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고 선을 그었다. 기획재정부 김용범 1차관과 한국은행 윤면식 부총재는 3일 아침 9시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거시정책협의회를 열고 물가동향 등 거시경제 여건과 대응방향 등에 대해 논의했다. 두 기관은 최근의 저물가 기조는 공급 쪽 변동성 확대에 따른 것으로 전반적인 수요 부진에 따른 디플레이션으로 볼 근거는 없다고 밝혔다.
앞서 통계청은 이날 8월 소비자물가지수가 104.81(2015년=100 기준)로 지난해 같은 달(104.85) 대비 0.0% 상승률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196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저 상승률이다. 종전 최저치는 1999년 2월의 0.2%였다. 공식적인 물가상승률은 소수점 둘째 자리에서 반올림해 0.0%가 됐지만, 소수점 세자릿수까지 따지면 전년 동월 대비 0.038% 하락해 사실상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김용범 차관은 이날 회의에서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초부터 0%대 중반에서 움직이다가 8월에는 0%로 낮아졌다”며 “이는 수요 쪽 물가상승 압력이 낮은 상황에서 농산물 및 석유류 가격 하락 등 공급 쪽 요인의 일시적 변동성 확대에 주로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온화한 기후 조건 등에 따라 7.3% 하락한 농·축·수산물 가격이 전체 물가상승률을 0.59%포인트 끌어내렸고, 국제유가 하락 역시 0.15%포인트 하락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변동성이 큰 공급 요인과 서민부담 완화를 위해 추진되는 정책 요인을 제외한 물가상승률은 1% 초중반을 유지하고 있다”며 “지금의 저물가 상황은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하게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윤면식 부총재는 긴 시계열의 저물가 상황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짚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주요 선진국에서 유례없는 완화적 통화정책과 노동시장 여건 개선이 이뤄졌지만 저물가가 지속되고 있는데, 이는 경기순환적 요인뿐만 아니라 기술진보 등 구조적 요인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윤 부총재는 “한국의 경우 대외개방도가 높은 가운데 정보통신 기술 보급과 온라인거래 확산이 빠르고 인구 고령화도 급속히 진행되고 있어 구조적 요인의 영향을 더 크게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우리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감안해 물가 상황에 대한 분석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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