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세력과의 정경유착으로 ‘해체론’까지 제기됐던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문재인 정부의 ‘전경련 패싱’(전경련 배제·무시 정책) 철회 움직임에 힘입어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러나 정작 혁신 약속은 제대로 지키지 않아 논란을 부르고 있다.
전경련은 25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정책간담회를 갖는다. 지난 8월 말에는 산하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이 민주당과 간담회를 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년 반 동안 단절됐던 전경련과 정부·여당의 공식 접촉이 한달새 두 번이나 잇달아 열리는 셈이다. 하루 뒤인 26일에는 경제5단체가 전경련 주관으로 불가리아 총리 초청 간담회를 갖는다. 전경련은 24일 “외국 귀빈 초청 경제단체 공동행사는 5단체가 돌아가며 주관해왔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전경련은 별다른 이유 없이 제외돼왔다”며 “이번이 3년 만에 처음”이라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고수해온 ‘전경련 패싱’ 정책의 변화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 두 차례 간담회는 모두 민주당 요청으로 이뤄졌다. 민주당은 삼성·현대차·에스케이(SK)·엘지(LG) 등 4대 그룹 등 주요 기업의 참석도 함께 요청했다. 4대 그룹은 국정농단사태 직후 전경련을 탈퇴한 터여서, 민주당이 전경련의 재기를 도와주는 모양새가 됐다. 전경련의 경제5단체 행사 주관도 정부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은 정부·여당의 변화에 조심스러워하면서도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전경련 관계자는 “변화가 있는 것은 맞는 것 같다”며 “2017년 7월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전경련 방문과 전경련을 포함한 경제단체 모임 추진 의사를 밝혔다가 무산된 적이 있어 아직은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전경련이 재기할 준비가 됐는지는 논란이다. 전경련은 2017년 3월 정경유착 근절 등을 뼈대로 한 혁신안 6개 항을 발표했지만, 이행실적은 낙제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명칭을 한국기업연합회로 변경한다는 약속은 불발로 끝났다. 회장단을 폐지한 뒤 전문경영인으로 구성된 경영이사회를 신설해 ‘오너’(재벌총수) 중심 운영에서 탈피하고 사무국의 독단을 없애겠다는 약속도 마찬가지다. 투명성 강화를 위한, 활동내용과 재무현황의 연 2회 공개 약속은 1회로 축소됐다. 정책연구기능을 한경연으로 이관해 싱크탱크 기능을 강화한다는 약속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한 한경연 출신 인사는 “한경연을 약화시킨 뒤 전경련 조사본부 인력을 한경연 소속으로 바꾼 것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정경유착 근절 약속도 절반에 그쳤다. 우익단체 지원의 창구역할을 했던 ‘사회협력회계’는 없앴지만, 정부 및 정치권 상대로 로비창구 역할을 하는 대관부서는 유지하고 있다. 약속이 지켜진 것은 조직·예산 감축뿐이다. 전경련·한경연 인원이 240명에서 80여명으로 대폭 줄었다. 전경련은 “명칭 변경과 회장단 폐지는 정관변경이 필요한데 주무부처에서 난색을 보여 불발로 끝났고, 회계보고서 공개 축소는 비용문제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2017년 2월 총회에서 대국민 사과와 함께 앞으로 환골탈태하여 완전히 새로운 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약속했으나 근본적인 체질개선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국가 경제나 국민의 이익보다 재벌 이익만 대변하는 태도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전경련은 최근 산업자본의 금융 지배를 막기 위한 금산분리, 재벌의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한 상호출자와 순환출자 금지, 재벌 총수일가의 사익편취행위를 막기 위한 일감 몰아주기 금지 등 경제민주화와 공정경제 구현을 위한 핵심 정책을 모두 대기업 차별 규제라고 공격했다.
정부·여당의 전경련에 대한 태도 변화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다. 개혁적 전문경제단체인 경제개혁연대의 김우찬 소장(고려대 교수)은 “정부·여당이 문재인 정부의 상징인 적폐청산과 공정경제의 대척점에 서 있고, 혁신 약속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전경련과 다시 관계를 맺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재벌개혁의 핵심인 경제력 집중 억제, 총수일가 일감 몰아주기 금지, 금산분리를 통한 건전한 금융회사 운영에 반대하는 전경련과 협력하는 것은 결국 개혁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전경련 패싱’ 포기라는 지적을 부인했다. 이원욱 수석부대표는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며 “이번 간담회는 기업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자리로, 전경련이 여의도에 있어 (국회에서) 가깝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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