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문재인 대통령이 대기업을 찾는 행보가 잦다. 산업현장 방문 기업 13곳 중 9곳이 대기업이다. 투자를 독려하거나 투자를 결정한 기업에 힘을 실어주는 성격이다. 10일 문 대통령의 삼성디스플레이 탕정 공장 방문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수출 중심 경제 구조 개혁을 강조하며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 전략을 펴던 임기 초와 달라, 노동계와 시민사회 일각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문 대통령이 기업 투자 확대에 유독 힘을 기울이는 이유는 현재 경제 여건과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경제 성장을 이끄는 3대 축인 수출과 민간소비, 설비투자 중 투자 부문의 부진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을 보면, ‘설비투자 성장 기여도’는 2018년 2분기에 마이너스(-0.4%포인트)를 처음 나타낸 이래로 지난 2분기까지 5분기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집권 전후 기간(2017년 1분기~2018년 1분기)과 크게 대비된다. 설비투자 성장기여도는 경제 성장률에 설비투자가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이 지표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설비투자 부진이 성장률을 깎아먹는 요인이라는 의미이다. 미-중 무역갈등 등 보호무역주의 확산 탓에 경기 둔화의 활로를 ‘수출’에서 찾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투자는 정부가 단기간에 기댈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변수다. 이날 삼성의 설비투자 계획(연평균 1조6700억원) 발표는 정부에게 ‘단비’ 같은 소식인 셈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경제 행보도 되짚어 보면 당대의 특수한 여건에 발을 맞췄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의 화두 중 하나는 외자 유치를 겨냥한 ‘비즈니스 외교’였다. 외화 부족이라는 특수성이 반영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등 여러 국가와 동시다발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을 독려한 것도 자유무역주의가 강화되던 세계 경제의 특수한 상황과 관련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고환율 정책과 대규모 토목공사, 박근혜 대통령의 공공부문 부채 축소 드라이브 역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고착화된 저성장 환경과 맞닿아 있다. 한 경제 전문가는 “정부 스스로 올해 설비투자 규모가 전년보다 4%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는 점을 염두에 두면 문 대통령의 대기업 투자 독려 행보에는 다급함마저 읽힌다”고 말했다.
이런 여건을 고려하더라도 문 대통령의 잦은 대기업 행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 후보 시절과 집권 초 내세운 경제 체질 개선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당장 이번 삼성 방문을 포함해 취임 이후 9차례나 문 대통령과 마주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만 해도 뇌물 공여와 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으며,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혐의로 수사 선상에 놓여 있다. 윤순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무총장은 “투자 침체가 심각하다고 하지만 피의자인 이재용 부회장을 대통령이 자주 만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특히 재벌 개혁 과제는 속도도 내지 못하고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번 방문은 충남지역 경제 행보로 정상적인 국정 운영의 일환”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재용 부회장과의 잦은 만남에 대해서도 “재판과 연계해서 볼 사안이 아니다”라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김경락 이완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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