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제안한 ‘재난긴급생활비’ 구체안에 대한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생활자 등 취약계층 지원에 한계가 노출된 정부 추가경정예산안의 빈틈을 서울시의 재난긴급생활비 제안으로 메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청와대 정무수석실 자치발전비서관실 쪽은 이날 오후 서울시 관계 부서와 재난긴급생활비 지원 방안과 관련한 면담을 했다. 이날 면담은 청와대 요청에 따른 것으로, 서울시 지원 방안의 구체적인 정책 내용을 확인하기 위한 취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소상공인, 일용직·플랫폼 노동자 등에게 긴급히 생활비를 지원하자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속도감 있게 논의를 구체화하고 있는 셈이다. 자치발전비서관실은 각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전반을 점검하고, 이를 중앙정부 정책과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박 시장이 주장한 재난긴급생활비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 실업급여 등 기존 복지제도의 혜택에서 비켜선 중위소득 이하 796만가구에 두 달 동안 생활비로 6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생활비는 선불카드 또는 지역사랑상품권 등으로 지급되며, 5월 말까지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앞서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이 제안한 전국민 대상 재난기본소득에 대해 부정적인 뜻을 밝힌 청와대가 박 시장이 내세운 선별적 현금 지원을 추경의 빈틈을 메울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서울시가 작성한 내부 검토 보고서를 보면, 중위소득(1인가구 기준 157만7천원) 이하 988만7천가구 가운데 국민기초생활보장제 지원자(137만7천가구), 실업급여 대상자(18만7천가구), 긴급복지 대상자(36만가구)를 제외한 796만가구를 대상으로 설정했다. 중복 수급으로 인한 재원 소요를 차단하기 위한 방안이다. 서울시는 이들 가구 모두에 재난긴급생활비를 지원하려면 4조8천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전달체계도 간명하다. 기존 시행되던 긴급복지지원제도 절차에 따라 중위소득 이하 가구의 신청을 받아 소득 기준 자료만 확인한 뒤 즉시 지급할 수 있다. 긴급복지지원제는 가구주의 이혼·사망·중병 등 갑작스러운 위기상황을 맞은 저소득층 가구를 대상으로 의료·교육·주거·생계비 등을 지원하는 제도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제도를 활용하기 때문에 별도의 지급 절차를 신설하지 않고, 저소득층에 촘촘한 지원체계를 마련할 수 있다.
이런 서울시의 제안은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추경안의 보완재로 평가된다. 코로나19 사태 진전에 따라 급하게 편성된 이번 추경안은 기존 복지제도를 활용하는 방식 위주로 사업을 선정하다 보니 정부 지원이 편중되고 실효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기존 정부 추경안에 사각지대가 많았기 때문에 이를 메울 수 있는 새로운 지원책을 검토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코로나19로 인한 민생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에 정부와 국회가 신속하게 관련 내용을 추경안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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