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중 정부가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의 제한적 보유에 관한 구체적 방안을 내놓을 예정인 가운데, 21대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앞다퉈 기업형 벤처캐피탈을 허용하는 내용의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있다. 각 개정안은 일반지주회사도 기업형 벤처캐피탈을 자회사로 둘 수 있도록 한 점은 같지만, 지분율과 투자 범위 등 세부 내용에선 차이가 크다. 입법 과정에서 치열한 토론이 예상된다.
24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기업형 벤처캐피탈 도입을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모두 3건이 올라와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김병욱·이원욱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했고, 미래통합당에선 송언석 의원이 개정안을 내놨다. 여기에 민주당의 이용우 의원도 조만간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소속 정당이 서로 엇갈리지만 김병욱·이원욱·송언석 의원 방안은 기업형 벤처캐피탈 도입에 별다른 제약을 두지 않는 데 반해 이용우 의원안은 촘촘한 규제를 담고 있다. 지난 2일 정부가 처음 기업형 벤처캐피탈 도입 계획을 밝힌 이후 불거진 재벌대기업그룹의 경제력 집중 등 부작용 우려가 발의 시점이 가장 늦은 이용우 안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이원욱·송언석 안은 각각 발의되었으나 그 내용은 같다. 일반지주회사에 기업형 벤처캐피탈을 도입하고 아무런 제약 조건을 달지 않았다. 일반지주회사에 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없도록 한 현 조항에서 기업형 벤처캐피탈은 금융회사의 예외로 인정한다는 내용을 덧붙이는 방식이다. 김병욱 안은 기업형 벤처캐피탈의 투자 내역과 특수관계인(총수 일가 및 계열사)과의 거래 관계 등을 공정위에 의무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이 추가된 점이 앞선 두 안과 다른 점이다.
이와 달리 <한겨레>가 입수한 이용우 안은 기업형 벤처캐피탈에 여러 제약 조건을 두고 있다. 우선 기업형 벤처캐피탈이 총수 일가가 지분을 갖고 있는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원천 금지한다. 투자 대상을 제한한 것이다. 나아가 기업형 벤처캐피탈의 지분을 일반지주회사가 100% 소유하도록 하는 ‘지분율 규제’도 담았다. 현행 법령은 일반지주회사는 자회사 지분을 20%(비상장사는 40%) 이상 보유토록 하고 있는데, 기업형 벤처캐피탈에 한해 의무 지분율 기준을 강화한 셈이다. 기업형 벤처캐피탈이 만들 벤처투자조합이 투자금을 조성할 때 지주회사의 계열사 또는 자기자본 출자로만 가능하도록 했다. 외부 자금을 끌어오지 못하게 투자금 조달 규제를 둔 것이다.
이외에도 기업형 벤처캐피탈이 대출 업무는 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김병욱 안에도 담긴 투자 내역과 특수관계인과의 거래 관계 등의 공정위 보고 의무 조항도 뒀다. 이 의원 쪽은 “기업형 벤처캐피탈 도입에 따른 우려의 핵심은 금산분리(산업자본과 금융산업의 분리) 원칙 훼손”이라며 “금산분리 원칙을 최대한 지키면서도 벤처 시장 활성화 등을 위해 기업형 벤처캐피탈을 허용하는 방안을 연구했다”고 말했다.
기업형 벤처캐피탈 도입 입법 논의는 내달 중 정부가 내놓을 세부 도입 방안이 나온 이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각 의원 발의안마다 내용 차이가 적지 않은 데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원천 금지를 요구하고 있는 터라 입법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도 예상된다.
이원욱 의원은 “과거와 같은 잣대로 금산분리 문제를 봐서는 안된다. 현재는 국가 신용도보다 대기업 신용도가 더 좋다. 금산분리 원칙은 완화해도 별다른 부작용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병욱 의원 쪽은 “대기업도 자금이 부족하던 시절엔 재벌의 사금고화를 막기 위해 금산분리 원칙을 지켜야 했다. 대기업에 현금이 많은 달라진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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