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매장에서 중고차를 사는 날이 올까. 최근 완성차 업체의 중고자동차 판매 허용 여부를 두고 찬반 진영이 팽팽하게 맞섰다. 완성차 5개사(현대·기아·르노삼성·한국지엠·쌍용)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동차산업협회가 완성차 제조사도 중고차 시장에 진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중고차 판매업은 대기업의 진출이 제한돼 있었는데, 그런 제한을 풀면 차의 진짜 품질을 알기 어려운
‘레몬 시장’ 때문에 불편을 겪어온 소비자들의 편익도 개선될 것이라는 논거를 댔다. 반면 중고차 업계는 산업 내 독과점이 심화되면 오히려 소비자가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 중고차 시장, 2년새 56% 성장
완성차 업계가 최근 중고차 판매업에 눈독을 들이는 배경에는 시장의 무서운 성장세가 있다. 17일 통계청의 10차 서비스업 조사를 보면, 중고차 판매업의 매출액 규모는 2016년 7조9669억원에서 2018년 12조4217억원으로 늘었다. 2년 만에 55.9%나 증가한 것이다.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경쟁에 새로 뛰어드는 업체들도 늘었다. 중고차 판매업을 하는 사업체는 2016년 5829곳에서 2018년 6361곳으로 증가했다.
중고차 시장 성장 배경엔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성비’를 중시하는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신차보다 저렴한 중고차를 찾는 소비자가 늘어난 현실이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기술 발전으로 중고차에 대한 인식이 꾸준히 개선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 과거 소비자들이 잦은 고장을 우려해 중고차를 꺼렸다면, 요즘 출시되는 자동차는 내구성이 상당히 개선돼 그런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인증 중고차’ 시장도 몸집을 불리고 있다. 인증 중고차란 완성차 업체가 연식과 주행거리 등 일정 기준에 맞는 자사 중고차만 가려내 매입한 뒤 소비자에게 되파는 차량이다. 완성차 업체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항목에 따라 직접 차량을 점검하고 이를 통과한 차량만 판매하기 때문에 ‘인증’이란 단어가 붙었다. 지금은 수입차 업체만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고 있는데, 베엠베(BMW)와 벤츠의 행보가 독보적이다. 베엠베는 2005년, 벤츠는 2011년 인증 중고차 시장에 뛰어든 후 최근까지도 판매량이 증가 추세를 그리고 있다. 특히 후발주자인 벤츠는 올해 상반기 인증 중고차 판매량(4070대)이 2018년 연간 판매량에 육박할 정도다.
■ “형평성 맞춰야” vs. “전례없는 독과점”
이번에 완성차 업계가 수입차와의 형평성을 문제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중고차 판매업은 2013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란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3년간 대기업의 진출이나 사업 확장을 제한하는 제도다. 중고차 판매업은 한 차례 연장을 거쳐 지난해까지 6년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보호됐다. 당시 수입차는 제한 대상에서 제외됐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그때는 소상공인들에게 수입차가 관심 대상이 아니어서 (규제에서)빠졌다”고 설명했다. 벤츠를 수입·판매하는 한성자동차 등이 대기업으로 분류됨에도 사업 확장에 제한을 받지 않아왔던 이유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기간이 끝난 지난해, 중고차 업계는 동반성장위원회에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했다. 생계형 적합업종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제도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만료되는 업종에 종사하는 소상공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됐다. 5년간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진출이 제한되며 이를 어기는 기업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해부터 중고차 판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두고 업계와 협의를 진행해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국내 완성차 업체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불씨는 지난 2일 중기부 주관으로 열린 업계 간담회에서 댕겨졌다. 중고차 양대 협회와 수입자동차협회 등이 참석한 이 간담회에서 김주홍 자동차산업협회 상무는 “완성차 업체들도 중고차 판매업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다.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수입차 업체들도 하는 중고차 사업을 국내 업체들만 못하고 있다는 일부 완성차 업체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중고차 업계의 반발은 거셌다.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지난 7일과 15일 두 차례에 걸쳐 성명을 내고 “완성차 업체 등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면 독과점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고차 업체들이 문제 삼는 지점은 ‘대기업’보다는 ‘완성차 업체’에 가깝다. 이미 신차 제조·판매를 모두 하고 있는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 시장까지 장악하면 이들 영향력이 너무 커진다는 것이다. 연합회 관계자는 “현대차가 중고차를 판매할 수 있게 되면 시장 점유율을 전부 가져다시피 하는 건 순식간이 될 것”이라며 “일단 신차 구매 고객이 처분하는 중고차는 전부 현대차 물량으로 빠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완성차 제조업체가 신차·중고차 판매를 겸하는 건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중기부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의 경우 제조업체는 아예 자동차 판매를 하지 않는다”며 “대기업의 진출 여부와는 별개로, 완성차 제조사가 신차 판매에 이어 중고차 판매까지 하는 게 맞느냐는 우려도 있다”고 했다.
■품질은 ↑, 가격은 글쎄
소비자엔 어떤 영향을 줄까.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면 차량의 품질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소비자에게 공개되지 않는 일명 ‘레몬 중고차’가 줄어들 것이라는 데에는 대부분이 동의한다. 저렴한 미끼 매물을 올리고 비싼 차를 강매하는 사기 행태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한 중고차 업체의 대표인 신아무개씨는 “요새 중고차 애플리케이션이 괜찮게 나와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인터넷에는 미끼 매물을 올려놓고 고객들을 ‘낚는’ 수법이 만연하다”며 “기업형 중고차 매매업체가 많아지면 그런 피해가 줄어들 것이라는 데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완성차 업체들이 노리는 지점도 이 부분이다. 완성차 업계는 “조금 비싸더라도 믿고 살 수 있는” 인증 중고차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켜주면 시장 규모가 더욱 커지는 건 시간 문제라고 본다. 아직 국내 중고차 시장은 다른 주요 국가들에 비해 신차 시장 대비 규모가 작은 편이기도 하다.
가격에 대해선 말이 갈린다.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가 직접 중고차를 판매하면) 중고차 가격을 방어할 수 있어 신차 판매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신차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서 중고차 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는 전략을 택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특히 제조업체가 신차와 중고차를 모두 판매하게 되면 이들 업체의 시장 지배력이 지나치게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예를 들어 앞으로 자동차 산업에서도 구독경제가 보편화되면 제조업체들이 중고차 시장에 내놓는 물량을 줄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만큼 중고차 판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가 결론이 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내 완성차 업체뿐만 아니라 수입차 업체들의 사업 제한 여부도 이번에 결정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국내 업체와의 형평성을 보장하기 위해 수입차 업체의 중고차 판매업을 제한하면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중기부 관계자는 “통상규범에 저촉된다는 의견도 있고 저촉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