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약 1조원을 들여 전기차 8만여대의 배터리를 교체하기로 했다. 화재 원인으로는 엘지(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셀 결함을 재차 지목했으나, 엘지에너지솔루션은 즉각 반발했다. 국토교통부도 결론을 내지 못한 만큼 비용 분담을 둘러싼 두 회사 간 갈등이 더욱 격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24일 현대차가 국토부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현대차는 다음달 29일부터 코나 일렉트릭과 아이오닉, 일렉시티 총 2만6699대에 대한 자발적 리콜(시정조치)을 진행한다. 수출 물량까지 포함하면 8만1701대 규모다. 리콜 대상은 2017년 9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엘지에너지솔루션 중국 난징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셀이 들어간 모든 차량이다. 배터리셀과 배터리관리시스템(BMS) 등이 포함된 모듈인 고전압배터리시스템(BSA)을 통째로 교체한다. 현대차는 “(해당 배터리 중) 일부에서 셀 제조 불량(음극탭 접힘)으로 인한 내부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확인됐다”고 했다.
현대차는 리콜 비용을 1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일단 지난해 4분기 실적에 품질비용을 모두 반영한 뒤, 엘지에너지솔루션과 합의가 이뤄지면 일부 환입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 쪽은 “향후 국토부 조사 완료 결과 등을 반영해 현대차와 엘지에너지솔루션 간 분담률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두 기업은 화재 책임을 놓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금전적인 부담 때문만은 아니다. 전기차 기술 경쟁력에 대한 신뢰도가 걸려 있는 데다, 화재 원인을 가려내야 할 국토부 조사도 미궁에 빠진 탓이다. 지난해 1차 리콜 당시 현대차는 배터리셀 분리막 손상을 원인으로 지목했으나, 해당 결함은 충·방전 369번과 주행 거리 14만7600㎞에 이르는 재연 실험에서도 화재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배터리셀 음극탭이 접힌 탓에 쌓인 리튬 석출물이 양극으로 확산돼 내부 합선이 일어났다는 주장이다. 국토부는 최근 들어 이에 대한 실험에 착수했으며 아직까지는 화재가 재연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엘지에너지솔루션은 현대차 쪽에도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회사는 이날 낸 입장문에서 “(지난해 3월 배터리관리시스템 업데이트 당시) 당사가 제안한 급속충전 로직을 현대차에서 배터리관리시스템에 잘못 적용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현대차가 배터리 급속충전 구간을 잘못 설정했고, 이로 인해 화재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다. 이에 대한 국토부 조사도 진행 중이다. 다만 업데이트를 받지 않은 차량에서도 국내 기준 6차례 불이 난 만큼 근본적인 원인으로 해석하긴 어려워 보인다.
두 기업 간의 갈등은 쉽게 매듭지어지지 못할 전망이다. 이들 기업이 거론한 요인 모두 국토부 재연 실험에서 화재로 이어지지 않았다. 최근 국토부는 어느 한 요인이 아닌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경우 책임 소재를 가리는 과정은 더욱 복잡해진다. 국토부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단일 요인으로만 실험을 했다. 복합 요인까지 고려하면 조사는 더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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