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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연준이 시장을 속이는 걸까, 시장이 연준을 오해한 걸까?

등록 2021-03-21 19:54수정 2021-03-22 10:25

미국은 지금 ‘연준-시장 샅바싸움’

옐런 ‘고압경제’ 파월 ‘평균물가목표’
완전고용 위해 물가상승엔 관대

시장은 물가상승 압력 커져
긴축시점 앞당겨질 것으로 우려

“시장의 금리발작 무시하라”
“연준의 경제과열 탓” 팽팽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미국 국채금리가 시장을 지배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고비마다 등판해 어르고 달래보지만 ‘중앙은행의 시간’은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연준이 시장을 속이고 있는 걸까, 시장이 연준을 오해하고 있는 걸까?

 옐런-파월 동맹 “고용 우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요즘 발언이나 표정을 보면 더 강인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뒤에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버티고 있어서다. 2018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에 의해 ‘경질’과 ‘발탁’으로 운명이 엇갈렸던 전·현직 연준 의장 사이지만 지금의 옐런·파월 동맹은 굳건해보인다. 우선 옐런 장관은 당연히 연준의 역할과 통화정책에 대한 이해가 누구보다 높다. 파월 의장도 재무부 차관을 역임한 바 있어 정책 공조의 길을 꿰뚫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시절엔 재정정책 확대의 중요성을 거듭 역설해왔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고용 회복’이 우선이라는 정책 지향점이 옐런 장관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옐런은 연준 의장 때 경제의 수요가 공급을 일시 상회하는 국면을 정책적으로 유도하자는 ‘고압 경제’를 주창한 바 있다. 소비와 투자 등 수요를 강하게 자극하면 노동력과 자원, 기술력 등 공급요인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옐런은 지난 14일 ABC방송에서 “1조9천억달러의 재정부양책과 인프라 투자로 내년에는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로 경제를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물가상승 우려에 대해서는 “인플레이션 위험은 크지 않고 관리가능한 수준으로, 1970년대와 같은 지속적인 고인플레이션은 결코 예상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옐런은 연준 의장 때 ‘임금 수수께끼’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실업률이 낮아졌는데도 임금과 물가가 올라오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옐런의 고압경제는 지난해 8월 파월의 연준이 채택한 유연한 ‘평균물가목표제’(AIT)와 맥락이 통한다. 물가상승률이 지속적으로 2% 목표치를 밑돌았을 경우 이후 상당기간 물가가 완만하게 2%를 웃도는 것을 용인하는 정책이다. 통화정책 목표의 무게중심을 ‘물가 안정’에서 ‘완전 고용’으로 옮겨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두 사람은 특히 취약계층의 고용 회복을 강조한다. 경제 회복의 온기가 가장 늦게 도달되는 소외계층이 노동시장에 들어오고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경제를 뜨겁게 달궈야 한다는 것이다. 파월은 지난 1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19로 소수 인종의 실업률이 백인보다 2배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며 “경제회복의 온기가 모든 사람들에게 스며들게 하는 정책적 진전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유동성 금단현상인가, ‘분노 발작’인가

시장은 물가에 상승 압력이 쌓이자 연준을 우려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저금리 기조를 흔드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준은 물가가 목표치를 넘어서도 상당기간 저금리를 유지할테니 걱정 말라고 시장을 달래왔다. 또 올해 물가상승은 기저효과 등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으로 규정했다.

문제는 물가상승이 일시적이고 통제 가능하다는 옐런과 파월의 말을 금융시장이 믿어줄 것인가에 달려있다. 최근 미국 국채금리의 급등세는 시장이 이 말을 의심하고 긴축 시점이 앞당겨질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 최서영 삼성선물 이코노미스트는 “사태가 악화할 경우 연준은 아직 회복되지 못한 고용을 기다려주지 못한 채 물가를 잡기 위한 긴축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고 짚었다.

유동성에 중독돼 금단현상을 보이는 시장은 연준이 나서주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연준 입장에서는 실물경기와 동떨어져 가파르게 상승해온 자산가격이 어느 정도 조정을 겪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보는 듯하다. 파월은 지난 17일 간담회에서 "어떤 기준으로는 일부 자산의 가치평가가 역사적으로 높다는 게 확실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금리상승에 당분간 개입할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이러한 시장과 연준의 샅바 싸움을 이효석 에스케이(SK)증권 연구원은 ‘아빠(파월)와 엄마(옐런)가 상황이 정반대인 두 자녀(물가, 고용)를 데리고 여행을 떠나는 가정’에 비유했다. “첫째(물가)는 혼자 막 앞으로 뛰어간다. 하지만 부모는 저러다 돌아오겠지 하며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시장)은 이러다간 큰 일 날 수 있다고 걱정한다. 문제는 둘째(고용)가 상태가 심각해져 수술실에 들어가야 될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월가의 유명 투자자 리처드 번스타인은 최근 <파이낸셜타임스> 칼럼에서 “부모는 자다 깬 아기를 달래지 않고 스스로 다시 잠들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며 “연준도 금융시장이 긴축 우려로 발작적 반응을 일으키더라도 무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반면 매파(긴축 선호) 성향인 빌 더들리 전 뉴욕 연준 총재는 <시엔엔(CNN)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경제를 과열시키려는 연준에 대한 시장의 ‘분노 발작’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며 친정에 화살을 겨눴다.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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