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2020년 3월 영업을 일시 중단한 씨지브이(CGV) 서울 명동점. 한겨레 김혜윤 기자
갈까 말까 오늘도 고민했다. 극장 말이다.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 넉 달이 되도록 인터넷에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코로나19가 극성인 요즘 사람 많은 극장에 가자니 영 찜찜하다. 가입한 지 몇 달쯤 된 넷플릭스 애플리케이션(앱)을 휴대전화에서 실행해본다. 볼 만한 게 눈에 띄지 않는다. 누구나 비슷한 상황을 겪어봤을 터다.
이런 고민은 소비자만 하는 게 아닌가 보다. 투자자도 비슷한 딜레마에 처했다. 이 기업의 미래는 과연 밝을까 어두울까. 쉽게 말해 이 회사 주식을 지금 사도 될까 말까.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국내 1위 극장 사업자 씨제이씨지브이(CJ CGV)다.
20년 흑자 기업 코로나19에 휘청
극장에 안 가본 사람은 없지만 CGV 현황을 잘 꿰는 사람은 드물다. CGV는 CJ그룹이 최대 주주인 영화관 체인이다. 최초 외국 기업과 합작회사로 세워졌다가 지금의 사명으로 바꾼 후 2004년 코스피(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외환위기 직후 서울 광진구 강변 테크노마트에 상영관(스크린) 11개를 갖춘 1호점을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23년이 지난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극장은 180개, 상영관 수는 1200개가 넘는다. 한국 영화 시장점유율 50%로 2위와 3위 사업자인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 점유율을 합친 것보다 크다.
매출의 60% 이상은 영화표를 팔아서 올린다. 이외 극장 내 매점 판매와 광고 등으로 수익을 낸다. 지역별로는 전체 매출의 절반가량이 국외에서 발생한다. 2010년대 들어 CJ그룹의 공격적인 국외 진출에 발맞춰 중국∙터키∙베트남∙인도네시아 등에서 영화관 사업을 벌인 결과다. 지금도 CGV가 운영하는 국외 극장은 412개로 국내보다 2배 이상 많다.
CGV는 2004년 상장 후 매년 영업 흑자를 냈다. 2018년부터 터키 등 국외 사업 부진 우려가 커지자 투자를 줄이고 자산을 내다 파는 등 허리띠를 졸라맸다.
운이 없었던 것일까. 2019년 2억 명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치를 찍은 국내 영화 관람객 수는 2020년 6천만 명으로 굴러떨어졌다. 코로나19 여파로 CGV의 매출도 2019년에 견줘 70% 넘게 급락했다. 잘나가던 극장산업에 암흑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래도 낙관적이다
증권가는 다시 희망을 말한다. 근거는 세 가지다. 먼저 CGV는 그간 허리띠를 바짝 조여 맸다. 극장은 인건비∙임차료∙건물관리비∙시설비 등 고정비가 많이 드는 사업이다. 장사가 안돼도 꼬박꼬박 나가는 돈이 많다. CGV는 지난 1년간 극장 직원 4천여 명 줄였다. 임차료를 낮추고 수익성이 낮은 극장의 문을 닫았다.
반면 영화표 값은 2020년과 2021년 두 차례 올렸다. 평일 1만3천원, 주말 1만4천원이다. CGV를 찾는 관객 수가 코로나19 이전의 80% 정도까지만 회복해도 이익이 날 거라고 시장이 기대하는 이유다.
중국과 베트남에서 희망을 보여줬다. 굵직한 할리우드 개봉작이 없는데도 2021년 1~3월 영업 흑자를 내며 실적 개선세를 보였다. CGV의 이익을 갉아먹었던 터키 사업 투자 부실을 대부분 털어냈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극장가에 신작 기대감이 크다. 지난달 빈 디젤이 주연을 맡은 액션 영화 <분노의 질주 9>가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했다. 7월부터 <블랙 위도우> <이터널스> <스파이더맨> 등 팬층이 두꺼운 마블영화도 줄줄이 상영한다. <007> <고스트 버스터즈> <탑건> <매트릭스> 등 기대를 모은 속편 영화도 극장에 걸린다.
대신증권과 신한금융투자는 이르면 연내 CGV의 영업 흑자 전환을 점친다. 반면 한화투자증권은 이렇게 속삭인다. “CGV 주가는 코로나19 이전 수준까지 회복하지 못한 몇 안 되는 종목입니다.”
여전히 비관적이다
반대 견해도 만만치 않다. 돈 빌려준 채권자 입장에 서서 짠물 평가하는 신용평가사가 대표적이다. 한국신용평가는 딱 잘라 말한다. “코로나 백신 공급과 집단면역 상황을 볼 때 2021년 영화관 수요 회복도, CGV의 실적 회복도 모두 불투명하다.” 극장 갈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자는 거다.
CGV의 미래가 어둡다고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쟁자의 등장이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구독형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수요가 쪼그라들 수 있다는 것이다. IBK투자증권은 지적했다. “콘텐츠 소비문화의 변화를 고려하면 스크린 구조조정이 필요하지만 극장 장기 임대 계약 등으로 빠른 구조조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
OTT의 부상은 그리 새롭지 않은 얘기다. 미국 아마존의 성장을 보며 전통 유통기업의 위기를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유료 케이블방송 이용료가 비싸서 OTT 사용 유인이 큰 미국과 한국 사정은 많이 다르기도 하다.
CGV도 할 말이 있다. 이 회사에서 최근 펴낸 투자설명서 56쪽을 참고할 만하다. 보고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극장산업은 원래 누구와 같이 보느냐가 중요한 매체이며 기본적으로 영화 관람 전후가 서로 이어지는 문화 형식을 지니고 있어서 개인적∙분산적으로 소비되는 OTT와는 소비 형식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아래엔 영화관에 자주 가는 사람이 OTT도 많이 이용한다는 통계도 붙어 있다. 연애할 땐 넷플릭스보다 뭐니 뭐니 해도 극장이 살갑고,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은 극장과 OTT 둘 다 애용한다는 이야기다. 내 얘기 같다.
박종오 한겨레 기자
pjo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