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내년부터 결혼, 출산, 장례, 수술·입원 등으로 인한 대출 수요에 ‘특별 한도’를 운용한다. 금융당국이 엄격한 가계부채 관리 기조를 이어가면서도 서민층 실수요자에 대한 대출에는 일부 예외를 인정하겠다고 한 데 따른 것이다. 다만 내년 1월부터 순차적으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가 확대되는 터라 금융 소비자들의 대출 상황에 따라 특별한도 인정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은행연합회는 10일 보도자료를 내어 은행권과의 협의 끝에 9일 실수요자에 대한 특별 한도 운용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신용대출 연소득 한도 관련 실수요자 지원확대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0월26일 가계부채 관리 강화방안을 발표하면서 신용대출의 한도를 ‘연소득’ 범위로 제한했지만 “서민층 실수요자 피해 최소화”를 위해 결혼, 장례, 수술 등 실수요가 인정될 때 일정 기간 한도를 넘겨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일시적인 예외를 적용하기로 한 바 있다.
이날 은행연합회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방안에 따라 신용대출 한도는 여전히 ‘연소득 이내’로 제한되지만 은행은 실수요자의 상황에 따라 고객이 증명서 등 요건을 만족시키면 추가로 특별한도를 부여해 대출을 내어 줄 수 있다. △본인의 결혼(혼인신고일 기준 세 달 이내) △배우자 또는 직계가족의 장례·상속세(사망일 기준 여섯달 이내) △본인 또는 배우자의 출산(출산일, 예정일 전후 세 달 이내) △본인 또는 배우자, 직계가족의 수술·입원(수술·퇴원일 기준 세 달 이내) 등 사유가 있는 차주(돈을 빌린 사람)에게 연소득 0.5배 이내로 최대 1억원까지 대출을 해줄 수 있는 것이다. 은행연합회는 “가계부채의 건전성 측면을 고려해 원칙적으로 분할상환 형태로 취급하되, 금융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대출실행 뒤 별도의 지출내역 증빙은 징구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특별한도 운용안은 은행별 전산준비 과정 등을 거쳐 내년 1월 시행된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위와 같은 실수요 상황에 처했더라도 곧바로 신용대출 특별한도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내년 1월부터 차주 단위 DSR 2·3단계가 조기 시행되면서 일단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을 합친 총 대출 금액이 2억원을 넘는 차주의 경우 DSR 40% 규제 대상이 되고, 7월부터는 총 대출액이 1억원을 넘는 차주도 규제 대상이 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기존에 전세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 등을 받은 것이 2억원을 넘을 경우 DSR 규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특별한도를 받는 데에 제한이 따른다”며 “실수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은행에서 신용대출 특별한도가 다 안 나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예컨대 연소득이 5000만원인 사람이 내년 결혼을 앞두고 추가로 신용대출을 받으려고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사람은 기존에 주택담보대출을 1억4000만원 받았고, 신용대출을 5000만원까지 최대한 받아 놓은 상태다. 그런데 내년 결혼자금 때문에 추가로 신용대출 특례 한도를 꽉 채워 2500만원까지 받으려고 한다면, DSR 40% 규제가 없는 상황이라면 신용에 문제가 없다는 가정 아래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내년 1월 규제가 시작되면 기존 대출에 더해 추가로 대출하려는 금액까지 2억원을 넘게 되는 상황이다. 특별한도를 받을 수 있는 요건을 갖췄더라도 DSR 40% 규제가 적용돼 최대한도(연 소득의 0.5배)로 2500만원을 다 받을 수가 없다. 이 경우 DSR 40%를 넘지 않는 범위인 1800만원 정도까지만 받을 수 있게 된다. 소득이 더 낮다면 특별한도로 받을 수 있는 신용대출 금액이 더 줄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다. 다만, 개인 신용도에 따라 대출 한도가 나오는 신용대출의 특성을 고려할 때 신용도 외 다른 조건이 같더라도 대출 가능 금액은 달라질 수 있다.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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