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기업분할 50건 중 47건 ‘물적’
상장사는 ‘대주주 지배력’ 높이지만
일반주주는 공모 신주 배정 못받고
자회사 상장땐 지분가치 훼손 우려
상장사는 ‘대주주 지배력’ 높이지만
일반주주는 공모 신주 배정 못받고
자회사 상장땐 지분가치 훼손 우려
상장사들이 알짜 사업부를 떼내는 물적분할 공시를 쏟아내고 있다. 사업부를 자회사로 편입한 뒤 향후 증시에 재상장시키면 모회사의 지분가치가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로 주가가 하락했다. 이에 소수주주들의 반발이 커지면서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분할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 기업 구조조정 활성화를 위한 정책수단으로 도입됐다. 수익성이 낮은 사업부문을 떼내 핵심사업에 집중투자하기 위해서다. 기업분할 중 인적분할은 기존회사 ‘주주’들이 지분율에 따라 새로 만들어진 회사의 주식을 나눠 갖는 방식이다. 반면 물적분할은 기존 ‘회사’가 신설회사의 주식을 100% 소유한다. 기존 주주는 모회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유하는 셈이다. 대주주는 지배력을 고려해 물적분할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19일 한국거래소의 기업분할 공시를 보면, 올해 50건 가운데 94%인 47건이 물적분할이다. 물적분할은 2019년 39건에서 2020년 57건으로 46% 늘었다.
CJENM 분할 공시 뒤 주가 22%↓
‘분할설’ 한화솔루션도 15% 떨어져
씨제이이엔엠(CJENM)은 예능, 드라마, 영화 등 주요 콘텐츠 제작사업을 물적분할하겠다고 지난달 19일 공시했다. 성장 동력인 이들 사업부가 분사하면 회사에는 커머스와 미디어 부문만 남는다. 공시 이후 씨제이이엔엠 주가는 22% 하락했다. 한화솔루션도 첨단소재부문 분할설이 불거진 지난 9월 이후 주가가 14.5% 흘러내렸다.
물론 핵심사업부 분할 자체가 무조건 소수주주에게 불리하다고만 단정하기는 어렵다. 대규모 투자를 위해 자금조달이 필요한 측면이 있고, 향후 성장을 통해 주주가치를 높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중 상장에 있다. 엘지(LG)화학,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사업 분할 뒤 자회사 상장에 대한 우려로 주가급락 사태를 겪은 게 대표적이다. 지난해 엘지화학에서 분리설립된 엘지에너지솔루션은 내년 1월 말 상장할 예정이다. 실제 지난 9월 현대중공업이 상장한 이후 모회사인 한국조선해양과 지주회사인 현대중공업지주 주가는 동반급락했다. 모회사가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을 때는 자회사의 사업가치가 온전히 주가에 반영되지만, 자회사가 상장하면 모회사의 지분가치와 중복계산되는 문제가 부각되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주주의 경우 자회사의 공모과정에서 신주를 배정 받지 못해 주주가치가 훼손된다.
포스코는 지난 10일 주력인 철강 사업부문을 분할한다고 공시하면서도, 철강 자회사 상장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물적 분할 뒤 상장’에 대한 소수주주들의 거부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포스코 주가는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이 제기된 이달 1일 이후 되레 5.4% 올랐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주주가치 측면에서 어떤 방식을 취하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지배구조가 소수주주를 챙길 수 있는 공정함을 갖췄는가에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포스코가 신성장 사업을 육성하려면 상당기간 투자비 지출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시간이 지나면 결국 상장을 추진하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물적분할 후 상장 가능성에 대한 주주들의 우려를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서는 자회사 기업공개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주회사의 정관에 기재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경제개혁연대 ‘이중상장’ 문제 지적
“모회사 주주에 신주인수 우선권을”
금융위·한국거래소, 개선방안 검토
전문가들은 대주주에 유리한 ‘쪼개기 상장’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방식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이라고 비판한다. 소수주주 권리 보호를 중요시하는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는 모회사와 자회사가 이중상장하는 경우가 드물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이사회의 독립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모자회사 동시상장을 허용하지 않는다. 일본도 대기업집단의 자회사 상장으로 소수주주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제도개선에 나섰다. 경제산업성은 ‘그룹지배구조 시스템 지침’을 제정해 모회사가 그룹 전체의 기업가치 향상과 자본효율성의 관점에서 자회사 상장을 유지하는 게 최적인지 정기적으로 검토하고 그 결과를 투자자에게 공개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최대 통신그룹 엔티티(NTT)가 자회사 엔티티 도코모를 공개매수해 상장폐지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도 분할한 자회사의 재상장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제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용우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내년 1월6일 토론회를 열어 이중 상장에 관한 거래소 규정을 바꾸는 안 등을 공론에 부칠 계획이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자회사가 상장하더라도 주식을 모회사 주주에 배정하는 방안 등을 포함해 여러 대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는 “100% 자회사가 상장하는 경우에는 모회사 주주에게 우선적으로 신주인수권을 부여한 뒤 일반공모를 실시해야 한다”고 제언한 바 있다. 금융위원회와 거래소도 분할 상장과 관련한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
‘분할설’ 한화솔루션도 15% 떨어져
사업가치 중복에 지분율 하락으로 타격
“모회사 주주에 신주인수 우선권을”
금융위·한국거래소, 개선방안 검토
제도개선 없으면 ‘코리아디스카운트’ 지속
인적분할은 호재?…SKT, 되레 주가 하향곡선
에스케이(SK)텔레콤이 인적분할한 뒤 기업가치가 쪼그라들고 있다.
지난달 29일 재상장한 통신사업 부문의 에스케이텔레콤과 반도체 등을 아우르는 에스케이스퀘어의 시가총액 합계는 17일 현재 21조3906억원이다. 분할 직전 에스케이텔레콤의 시총(22조3026억원)보다 4.1% 감소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2.8% 상승했고 같은 통신업종의 케이티(KT)와 엘지(LG)유플러스 주가도 모두 올랐다. 분할 공시가 이뤄진 지난 6월10일(23조6357억원)과 견주면 시총은 9.5% 줄었다.
에스케이스퀘어의 주가가 재상장 이후 25%나 떨어진 영향이 컸다. 대주주에 유리한 방향으로 지배구조가 재편될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증권가에서는 최태원 회장이 최대주주인 에스케이가 향후 에스케이스퀘어와 합병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따라서 에스케이에 합병비율이 유리하게 정해지려면 에스케이스퀘어의 주가 상승이 제약받을 것이라는 얘기다.
인적분할은 과거에 해당 기업 주가에 긍정적이었다는 조사결과가 많다. 분할 전보다 분할 뒤 두 회사의 시가총액 합이 대체로 더 커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인적분할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중립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체제 전환이 실제로 주주가치의 증대효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선 고민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반면 인적분할 이후 최대주주의 지주회사에 대한 지분율과 지주사의 신설회사에 대한 지배력은 크게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도 여기에 기여했다. 인적분할때 자사주에도 신설회사의 신주를 배정하고 의결권이 살아난다는 점을 기업들이 지배력 확대에 활용한 것이다. 2017년에 유독 인적분할이 많았는데, 당시 이러한 자사주 마법을 제한하는 법안들이 발의됐기 때문이다. 효력이 발생하기 전에 지주사 전환을 서두르는 기업이 많아진 것이다. 하지만 자사주를 규제하면 경영권 방어가 어려워지고 자금 부담이 커진다는 재계의 반발로 이들 법안은 여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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