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 서울 여의도 사옥. 한국거래소 제공
상장사들의 정기 주주총회가 본격화하면서 그동안 논란이 됐던 ‘쪼개기 상장’의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인수·합병 때 대주주 지분만 고가에 사들이는 ‘쪼개기 인수’에 대한 반발도 주주제안으로 분출되고 있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알짜 사업부를 떼낸 뒤 상장하는 기업들에 대한 주주들의 비판이 거센 가운데, 모자회사 동시상장으로 인한 이해충돌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자회사를 자진 상장폐지하라는 제안이 사조그룹 자회사 주주에게서 나왔다. 사조그룹은 5개사가 상장돼있는데 사조산업→사조대림→사조오양 중심으로 지배구조가 형성돼있다.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상무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사조산업이 지난해 소액주주의 주주제안을 부결시키기 위해 손자회사인 사조오양을 통해 주식 102억원어치를 사들여 현재 약 30억원의 평가손실이 났다”고 말했다. 모회사 대주주의 전횡에 손자회사 소수주주가 피해를 입었다는 얘기다. 김 상무는 “차라리 사조산업이 사조오양 지분 100%를 청산가치 이상의 가격에 사들여 상장폐지하면 이런 이해충돌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24일 열리는 사조오양 주총에 감사위원 선임 안건을 주주제안한 차파트너스는 주주들의 의결권 위임을 받아 표대결에 나선다.
쪼개기 상장에 대한 ‘후과’도 잇따르고 있다. 국민연금은 23일 엘지(LG)화학 주총에서 신학철 부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는 안건에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배터리 부문(엘지에너지솔루션)의 물적분할을 추진해 기업가치를 훼손하고 소액주주에 손실을 입힌 대표이사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의안 분석기관인 좋은기업지배연구소는 세아베스틸의 25일 주총에서 분할계획서 승인 안건에 반대할 것을 권고하고, 물적분할에 찬성한 김지홍 후보의 사외이사·감사위원 재선임에도 반대했다. 세아베스틸은 자회사 상장 계획은 없다고 밝혔지만 이를 정관에 명시하는 등의 제도적 장치 마련은 거부했다.
한샘 2대주주인 미국계 펀드 테톤캐피탈은 23일 주총에 기업지배구조 전문가인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선임하는 주주제안을 상정했다. 한샘 대주주는 막대한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지분을 팔았지만 인수 과정에서 나머지 주주들을 배제한 게 발단이 됐다.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은 지난해 10월 보유주식 652만주(27.7%)를 당시 시가(11만2천원)의 2배 수준인 주당 22만2천원에 사모펀드 운용사 아이엠엠(IMM)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소액주주들에게는 같은 가격에 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현재 주가는 8만8300원으로 20% 넘게 떨어졌다.
인수설이 도는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소액주주들도 긴장하고 있다. 에스엠은 최근 제3자배정 유상증자한도를 발행주식수의 50%로 확대하는 정관변경안을 주총에 급히 올렸다. 앞서 이수만 총괄프로듀서의 에스엠 지분(19.17%)을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인수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업계에서는 일단 대주주 지분만 고가에 인수한 뒤 제3자배정을 통해 지배권 강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주총에 감사후보 선임 주주제안을 낸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인수·합병이 진행될 경우 소액주주 지분도 장내 매수나 공개매수 등를 통해 제 값을 내고 사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광주신세계의 최대주주였던 정용진 부회장도 지분(83만3330주) 전량을 20% 프리미엄을 얹어 신세계에 지난해 9월 넘긴 바 있다. 영국과 유럽연합(EU)에서는 인수·합병을 목적으로 상장사 주식을 25%이상 사들일 경우 ‘50%+1주’를 공정한 가격에 매수해야 하는 의무공개매수제도가 도입돼 있다.
한광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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