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7.5원 내린 1219.8원으로 마감했다.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연합뉴스.
엔화 가치가 최근 추락하면서 100엔당 원화 환율이 3년4개월 만에 980원대로 내려왔다.
2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7.5원 내린 1219.8원에 마감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협상 진전 기대로 위험회피 심리가 누그러진 영향이다. 엔-달러 환율은 아시아 시장에서 소폭 내린 123엔대에서 움직였다. 이에 따라 엔화에 견준 원화의 환율은 100엔당 8.66원 내린 988.13원으로 나타났다. 2018년 12월5일(985.45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그만큼 엔화 대비 원화의 가치가 절상된 것이다. 두 통화는 시장에서 직접 거래되지 않아 달러화 기준으로 비교한 (재정)환율을 계산해 상대 가치를 매긴다.
올해 들어 원화가치는 달러와 비교해 2.61% 떨어졌다. 엔화는 달러 대비 7.36% 절하돼 6년여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며 안전자산이라는 체면을 구겼다. 일본 중앙은행(BOJ)은 미국 중앙은행의 공세적 긴축과 대조적으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 등 주요국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비상이 걸렸지만 일본은 아직 물가 걱정이 없어서다. 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대비 0.9% 상승에 그쳤고, 식료품·에너지를 제외하면 1.0% 하락했다. 일본은행은 되레 금리를 누르기 위해 국채를 무제한 매입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일본의 국채(10년물) 금리 격차는 2.21%포인트까지 벌어져 엔화 약세를 부채질했다. 일본의 높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도 엔화 약세의 주요 원인이다.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 급등으로 일본의 무역수지는 7개월 연속 적자를 냈다.
엔화 약세가 우리나라 수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많다. 2010년대 초중반에는 엔-달러 환율이 80엔에서 120엔대까지 치솟아 한국의 수출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 저하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엔 엔화 약세와 더불어 원화 강세가 동시에 진행돼 수출 충격이 컸다. 전규연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지금은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일본 기업들의 생산단가가 가파르게 상승해 이익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다만 엔화 약세가 장기화할경우 일부 업종의 피해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찬희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엔화 약세가 하반기까지 이어지면 일본과 수출경합도가 높은 철강, 기계 등의 업종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한광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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