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부채의 부실화에 대한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코로나19에 가계와 기업의 부채는 급증했지만, 아직 빚을 갚기 어려운 ‘부실 채권 비율’은 역대 최저치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차주들의 상환 능력이 좋아서 그런게 아니라 정부가 금융 지원으로 부실을 막고 있어 나타난 ‘착시 효과’에 가깝다. 오는 9월 금융 지원 종료를 앞두고 금융기관 손실 흡수 능력 확충, 소상공인 대출 연착륙 등 여러 방안이 분주하게 논의되고 있다.
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은행의 총 여신(대출) 대비 부실채권비율은 0.50%로 비교가능한 통계가 시작된 2016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총 여신 규모는 2371조9천억원으로 전년(2171조7천억원)보다 200조2천억원 늘어난 반면 부실 채권 규모는 11조8천억원으로 1년 전(13조9천억원) 대비 2조1천억원 줄었다. 부실 채권은 회수가 의심스럽거나 불가능한 대출을 뜻한다. 대출 급증에도 부실 규모가 커지지 않은 셈이다. 부실 채권이 감소한 까닭에 국내은행이 이에 대비해 쌓아 놓는 적립금 비율(대손충당금적립률)도 작년 말 165.9%로 전년(138.6%)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실제 1800조원까지 불어난 가계부채의 경우 아직 연체율이 낮은 상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체 금융기관 가계대출 연체율은 작년 말 기준 0.52%로 코로나19 이전(2019년 4분기)인 0.81%를 밑돌았다. 가계대출 연체율은 글로벌 금융위기인 2009년에는 2.26%까지 올라간 바 있다.
그런데 이를 두고 ‘허상’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온다. 정부의 코로나19 금융 지원 조처로 부실이 잠시 가려져 있는 것이라는 우려다. 한은 관계자는 “정부의 지원으로 부실 채권 규모가 작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2020년 4월부터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에 대해 대출 만기연장, 원리금 상환유예 등을 해주고 있으며, 지원을 받고 있는 대출 규모는 133조4천억원으로 추정된다. 갚을 빚이 없으니 부실도 발생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부실을 막는 조처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총 4차례 연장됐던 금융 지원 조처는 오는 9월에는 종료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가운데 한은의 연내 기준금리 추가 인상으로 부채 상환 부담은 갈수록 커지는 모습이다. 변동금리 대출을 보유한 차주는 0.25%포인트씩 기준금리가 인상될 때마다 연간 대출 이자만 평균 16만4천원 늘어난다.
특히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자영업자의 1인당 대출 규모가 작년 하반기 기준 약 3억5천만원으로, 비자영업자(9천만원)의 4배에 달한다. 정부 금융 지원 종료와 대출 금리 인상이 더해지면 이들 계층의 부실이 매우 커질 가능성이 크다.
금융 당국과 전문가들은 곧 터질 부실 문제에 대비해 은행권에 손실 흡수 능력 확충을 주문하고 있다. 상환 불이행에 대응하는 대손충당금을 더 보충하라는 것이다. 정은보 금감원장은 지난 3일 “대내외 충격에도 은행이 자금 중개 기능을 차질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손실 흡수 능력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며 “평상시 기준에 안주하지 말고 잠재 신용위험을 보수적으로 평가해 대손충당금을 충분히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순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지난 3월 보고서에서 “정부 금융 지원 정책이 종료되고, 대출 상환이 시작되면 그간 수면 아래 있었던 부실 채권이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며 “국내 은행은 최대 규모의 부실에 대비하기 위한 대손충당금을 추가로 적립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자영업자 대출 연착륙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정부는 조만간 발표할 추가경정예산안에 ‘소상공인 제2금융권 대출 은행권으로 전환’, ‘한국자산관리공사 채권 매입’ 등의 방안을 담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
전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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