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 종가가 표시돼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0.3원 오른 달러당 1,371.7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연합뉴스
원-달러 환율이 또 1370원을 넘어섰다. 지난달을 기점으로 원화 가치는 유독 유로화·엔화 등 다른 통화보다 훨씬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요인이 국외에서 밀려들어오는 것이라 정부로서는 대책도 마땅하지 않은 상황이다. 1400원 돌파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0.30원 오른 1371.7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1369.0원에 출발한 환율은 오전 1364.4원까지 내려갔으나, 오후 다시 1377.0원까지 치솟으면서 큰 등락(12.6원)을 보였다. 1400원 돌파 향방을 놓고 시장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달러 매도·매수 신경전이 팽팽하게 벌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공격적 통화긴축으로 안전 자산인 달러 가치가 높아지면서 유로화, 엔화, 파운드화, 위안화 등 주요국 통화 가치는 모두 떨어지고 있다. 7월까지만 해도 우리 원화는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월부터 7월까지 달러 대비 원화 가치 하락 폭은 9%로 유로화(10.5%), 엔화(16.7%) 등과 비교해 절하 폭이 작았다.
하지만 8월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8월1일~9월5일 달러 대비 원화 가치 하락 폭은 5.17%로 달러 대비 유로화(2.94%)보다 크고, 엔화(5.2%) 절하 폭과 비슷하다. 이 기간에 달러인덱스는 3.9% 상승하는 데 그쳤다. 갑자기 원화 가치가 다른 통화보다 더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달러인덱스 상승폭 이상의 환율 상승은 글로벌 달러 초강세 요인보다는 우리 경제의 무역수지 적자 악화에 따른 것으로 시장은 분석하고 있다.
중국 경제 둔화 가능성이 반영되고 있는 위안화 약세도 대중국 교역 비중이 큰 우리나라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되면서 원-달러 환율을 더 밀어 올리고 있다. 여기에 국내 연기금의 지속적인 해외자산(주식, 채권)투자 비중 확대에 따른 달러 자금 수요도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는 “경상수지 흑자로 벌어들이는 외화가 수백억달러 이상이지만, 우리 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와 ‘서학개미들’의 달러 수요가 계속 늘고 있고 국민연금의 막대한 해외자산 투자를 위한 달러 수요도 국내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상승(달러 강세)를 불러오는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5월 중기자산배분안(2023~2027년)에서 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을 16.3%에서 14.0%로 줄였다. 국민연금 해외주식 투자금액은 2017년 108조3000억원(전체 기금의 17.42%)에서 지난 1분기에 250조2000억원(26.9%)으로 크게 늘었다.
문제는 상대통화인 달러 초강세, 중국 경기 둔화, 국제원자재가격 상승 등 대외 요인이 복합 작용하고 있어 당국으로선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국내 외화유동성 수준에 문제가 없다면서도 “환율이 결정되는 시장에 대해 정부가 지금 단계에서 크게 개입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원-달러 환율이 계속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면 정상적인 달러 수요가 아닌 미리 사놓자라는 ‘가수요’가 나타날 수 있다. 시장의 기대 심리가 한쪽으로 몰리는 것을 미리 차단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은행이 한미 금리 격차를 줄이는 것에 대해 더 강한 메시지를 내놓는 등 국내 차원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대응책을 찾아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슬기 기자, 조계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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