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이날 거래를 마감한 원-달러가 표시돼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17.3원 오른 1,390.9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연합뉴스
원-달러 환율이 1390원도 돌파하면서 1400원 목전에 도달했다. 환율은 미국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 대비)이 8.3%로 ‘인플레이션 정점론’을 기대했던 시장의 예상이 빗나가자 상승 속도가 가팔라졌다. 원화 가치 하락세는 무역수지 적자, 수출 둔화 등 우리 내부 국내 요인이 점차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국외 요인인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통화긴축 속도까지 훨씬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더 깊고 오래 갈 공산이 커졌다.
1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7.30원 오른 1390.90원에 장을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이 1390원을 넘은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인 2009년 3월30일(1391.50원) 이후 13년5개월여 만이다. 장중에는 1395.50원까지 치솟았다. 만약 추후 원-달러 환율이 1400원까지 돌파할 경우 1998년 외환위기, 2009년 금융위기 때에 이어 세 번째가 된다. 이날 코스피는 전일보다 1.56%(38.12) 하락한 2411.42에 거래를 마치면서 2400선을 간신히 지켜냈다.
원-달러 환율 상승은 간밤 발표된 미국 8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8.3%(전년 동기 대비)로 시장 전망치(8.0%)를 웃돈 것이 영향을 미쳤다. 특히 시장을 놀라게 한 것은 미국 근원 소비자물가지수였다. 미국 8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전월(8.5%)에 비해 소폭 둔화했지만, 변동성이 큰 에너지 및 식료품 가격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6.3%로, 전월(5.9%)보다 높았다. 지난 3월 6.5%에서 4월 6.2%, 5월 6.0%, 6월 5.9%로 점차 낮아지는 추세를 보여온 근원 소비자물가가 재차 급등한 것이다.
기조적 물가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인 근원 소비자물가의 재상승은 미국 인플레이션이 생각보다 장기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유가와 곡물 가격이 내려가면 인플레이션이 진정될 것이라는 희망이 무색해지는 것이다.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정점이 아직 멀었다고 보면서 장기전에 돌입할 경우 글로벌 통화긴축 속도는 훨씬 빨라질 수밖에 없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지난 9일(현지시각) “물가가 목표치 이상으로 오래 머물수록 대중이 이를 규칙으로 받아들일 위험이 커지고, 이는 물가 잡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한층 올릴 뿐이다”며 공격적인 통화 긴축을 경고한 바 있다.
미국의 통화 긴축으로 달러 대비 주요국 통화 가치는 대부분 하락하고 있다. 그런데 원화 가치는 지난달을 기점으로 다른 주요 통화에 견줘 절하 폭이 더 커지고 있어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미 연준의 금리 인상, 유럽 경제 둔화 등 대외 요인에 무역수지 적자, 반도체 수출 둔화 등 국내 요인까지 겹치고 있다. 권아민 엔에치(NH)투자증권 연구원은 “대내외적으로 원화를 강세로 방향을 전환할 재료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며 “원-달러 환율의 1차 저항선은 1420원으로 판단되며, 연내 환율 상단이 1450원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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