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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증권

CS 급한 불 껐지만 채권 22조 증발…‘위기 신호’ 될 수도

등록 2023-03-20 17:48수정 2023-03-21 02:45

로이터 연합뉴스
로이터 연합뉴스

크레디스위스(CS·크레디트스위스) 매각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음에도 시장은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매각 과정에서 크레디스위스 투자자들이 부담하게 된 손실을 시장에서는 ‘위기 신호’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달러 유동성 공급을 강화하며 ‘소방수’로 나섰지만 불안 심리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 긴박했던 주말…CS 투자자들 손실 떠안는다

20일 크레디스위스스위스 금융당국(FINMA) 발표를 보면, 크레디스위스와 유비에스(UBS)의 합병 비율은 1대 22.48이다. 크레디스위스 주주들이 2248주를 내야 유비에스 주식 100주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유비에스의 최근 주가를 고려하면 크레디스위스는 1주당 0.76스위스프랑 정도의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직전 거래일 종가인 1.86스위스프랑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아케고스캐피털 투자 실패로 타격을 입은 지난해에도 100억스위스프랑을 방어했던 기업가치가 30억스위스프랑(약 4조원)로 뚝 떨어진 것이다.

이는 사태가 그만큼 긴박하게 돌아갔음을 보여준다. 스위스 연방각료회의는 이번 인수가 주주 동의 절차를 밟지 않고도 진행될 수 있도록 긴급 조례를 발동했다. 스위스국립은행(SNB)의 개입에도 크레디스위스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주주들의 손실 부담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타개책을 마련한 것이다. 앞서 스위스국립은행은 크레디스위스에 최대 500억스위스프랑(약 70조원)을 빌려주기로 하는 등 유동성 지원에 나섰으나, 이런 조처도 주가 폭락과 대규모 고객자금 유출을 막지 못한 바 있다.

주주뿐 아니라 채권 보유자들도 손실을 떠안는다. 크레디스위스는 “스위스 금융당국(FINMA)의 결정으로 총 160억스위스프랑(약 22조원)에 이르는 기타기본자본(AT1)을 전액 상각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코코본드’(조건부자본증권)라 불리는 채권을 일컫는 것이다. 일반적인 채권의 경우 회사가 파산을 하더라도 선순위로 변제되지만, 코코본드는 위기 상황에 주식으로 강제 전환하거나 상각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한 마디로 회사가 위기에 빠지면 코코본드 투자자들에게는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지 않다도 된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회계상으로도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된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는 차이가 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코코본드는 당시 부실한 금융회사에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된 데 대한 반성으로 도입됐다. 앞으로는 투자자도 손실을 분담해야 한다는 취지다. 바젤3 규제는 이런 채권이 자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 상각되는 등 투자자가 손실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크레디스위스의 악셀 레만 이사회 의장(왼쪽)과 UBS의 콜름 켈러허 이사회 의장. AFP 연합뉴스
크레디스위스의 악셀 레만 이사회 의장(왼쪽)과 UBS의 콜름 켈러허 이사회 의장. AFP 연합뉴스

■ 불안 심리 확산될라…달러 유동성 지원 강화

스위스 당국의 진화 작업이 성공으로 끝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일단 시장에서 크레디스위스 채권 투자자들의 손실을 ‘위기 신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 계약서상 정해진 요건에 따라 정상적으로 진행된 상각 절차라고 해도, 시장에는 상각 리스크가 충분히 반영돼 있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유럽 금융당국도 크레디스위스 주식·채권 보유자들이 부담하게 된 손실로 인해 투자 심리가 얼어붙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 자금조달이 오히려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계속해서 다른 은행으로 위기가 전이될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발벗고 나선 배경에도 이런 위기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연준은 상설 통화스와프가 체결돼 있는 주요 중앙은행 5곳과 함께 달러 유동성 공급을 강화한다고 19일(현지시각) 발표했다. 최소한 다음달 말까지 7일 만기 달러 스와프의 시장 운영 빈도를 주 1회에서 일 1회로 늘리기로 했다. 코로나19 초기에 내놨던 것과 동일한 조처로, 은행들의 달러자금 조달이 보다 원활히 이뤄지도록 하는 차원이다.

다만 아직까지 시장은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날 아시아 증시에서 주요 은행들의 주가는 물론 채권 가격도 하락세를 보였다. 에이치에스비시(HSBC)와 스탠더드차터드(SC) 주가는 한때 홍콩 증시에서 7% 넘게 빠졌다. <블룸버그>는 뱅크오브이스트아시아(BEA)의 달러화 표시 영구채 가격이 8.6센트 빠진 79.7센트를 기록하며 이례적인 하락세를 보였다고 보도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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