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백혜련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계와 시민사회 반발로 공전해온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이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었다. 관련 논의가 시작된지 14년 만이다. 지난해 국정과제에 포함되면서 법안 심사에 탄력이 붙은 결과다. 그러나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 반발이 거세 본회의 통과까지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 15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뼈대로 하는 보험업법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실손의료보험 가입자가 요청할 경우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의료기관이 보험회사에 대신 전송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동안은 가입자가 병원과 약국에서 직접 종이 서류를 발급 받아 보험사에 팩스·이메일·모바일 앱 등으로 접수해야 했는데, 이 절차를 간소화했다.
이미 지난 2009년에 국민권익위원회는 소비자 편익을 위해 실손보험금 청구 절차를 개선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후 관련 법안 논의가 국회에서 수차례 있었지만 상임위 문턱을 넘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의료계와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이들은 개인 의료정보가 전자적 정보 형태로 보험회사에 대거 쌓일 경우 장기적으로 보험회사만 배불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보험사가 집적된 정보를 토대로 지급 규모가 큰 백내장에 대한 보장을 축소한다든지, 소액 청구 금액이 늘어나는 만큼 그 대신에 고액의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식으로 수익을 추구하면 가입자 권익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찬진(변호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은 “보험사들이 상품 가입 때 개인정보 활용 동의를 받아 민감한 의료 정보를 입맛에 맞게 활용하려 들 수 있다”고 했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는 “미지급금이 수천억 쌓여있는데 보험사가 손해보면서 간소화를 하겠다는 건 이렇게 모은 개인정보를 토대로 보험금 지급 거부 등을 통해 손해율을 관리하겠다는 심산”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험업계는 개인정보 오남용 가능성을 일축했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보험금 청구 목적으로 수집한 정보를 그 외 심사에 활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는 개정안이 시행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은 금융감독원에서 제정하는 표준약관을 따라야하기 때문에 개별 보험사가 보장 내용이나 보험금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의료기관으로부터 개인정보를 받아 보험사로 전달해주는 ‘전송대행기관’을 어디로 선정할지를 두고도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의료계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중계기관이 되면 비급여 진료 정보가 심평원에 축적되는 데 반발하자 금융위는 그 대안으로 보험개발원을 검토 중이다. 김종민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보험업계 이익을 대변해온 보험개발원이 민감 의료정보를 중개하는 방식이 과연 공익에 부합하는 일인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당국은 개정안이 시행되면 대다수 보험 가입자의 편익이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 신진창 금융위원회 금융산업국장은 “청구 간소화가 시행되면 번거로워서 보험금 청구를 하지 않았던 가입자들이 마땅히 돌려받아야 할 보험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료 인상 가능성을 두고는 주장이 엇갈린다. 청구 절차가 간편해지면 청구 건수가 늘어 보험료가 인상될 수 있다. 관련 전산을 구축하는 비용 역시 보험료로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에 청구 서류를 접수하던 보험사 인력 관련 인건비가 줄면 보험료는 내려갈 수 있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