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19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열린 뉴욕경제클럽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연 4.99%.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5% 턱밑까지 치솟았다. 일부 거래 플랫폼에선 5.00%를 웃돈 호가가 나오기도 했다. 16년 만에 호가창에 뜬 숫자에 전세계 주식시장이 깜짝 놀라며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여년간 지속된 저성장-저금리-저물가 국면이 일단락되고 새 국면이 본격화한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인 순간이다.
20일 로이터 통신과 미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자료를 종합하면, 채권 트레이더들이 사용하는 일부 거래 플랫폼 호가창에 연 5.001%란 숫자가 뜬 건 19일 오후 5시(미 동부시각 기준)께다. 이미 전날 거래에서 4.90%(종가 기준)선을 돌파하는 등 최근 4거래일 연속 가파르게 올랐지만 ‘5’라는 숫자는 투자자들의 심리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시엔비시(CNBC) 등 미 매체들 또한 종가(연 4.99%)보다 일부 거래 플랫폼에 나온 5.001%에 주목한 보도를 쏟아냈다.
미 대표 장기 금리인 국채 10년물 금리가 튀어오른 건 전날 중동 정세의 불안정과 예상보다 양호한 경제지표 발표에 이어 이날 나온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 발언의 영향이 컸다. 파월 의장은 한 강연에서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다. 일정 기간 추세를 밑도는 성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경기를 희생시킬 수 있다는 취지다. 최근 연준 인사들이 자주 내놓은 ‘고금리 장기화’ 메시지를 파월 의장이 강도를 높여 강조한 것이다. 투자자들의 심리를 얼어붙게 하기에 충분했다. 다우존스·나스닥·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 등 미 3대 지수도 소폭이긴 하지만 모두 하락했다.
미국 채권·주식 시장의 충격은 3~4시간 뒤 개장한 태평양 건너 아시아 시장을 강타했다. 코스피는 2400선이 붕괴했다. 전날 1.90% 급락한 코스피는 이날 또다시 1.69% 하락하며 2375.00으로 마감했다. 2400선이 무너진 건 올해 3월21일 이후 약 7개월 만이다. 코스닥지수는 좀 더 큰 폭인 1.89% 하락했다.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우선주 제외) 중 9종목이 하락했다. 특히 포스코홀딩스(-5.03%)·엘지에너지솔루션(-3.54%)·엘지화학(-3.04%)은 급락했다. 일본(닛케이255)·중국(상하이종합)·홍콩(항셍)·대만(가권) 등 아시아권 주요 지수들도 빠짐없이 하락했다.
이런 금융시장의 불안한 양상은 당분간 더 지속될 전망이다. 시장에 영향을 미칠 변수들이 겹겹이 쌓이고 있어서다. 고금리 장기화를 연일 공언하는 미 연준의 정책금리 결정과 고위 인사들의 연이은 메시지 외에도 중동 분쟁의 전개 양상과 이스라엘·우크라이나에 대한 미 정부의 안보 지원 예산 편성 추진 등도 모두 시장이 주목하는 변수다. 특히 안보 지원 예산을 편성하면 그에 따른 재원 조달을 위해 국채 발행이 필요한 만큼 채권 금리를 자극할 수 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고금리 장기화라는 통화정책 이슈로 채권 금리가 오른 상태에서 미 재정 지출 추가 확대 가능성에 수급 부담도 얹어지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다음달 초 예정된 미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전까지 시장 변동성은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도 “한국은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없어 국고채 발행에 따른 수급 부담은 적다. 하지만 미 국채 금리 움직임에 따라 흐름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어 채권시장의 긴장감은 높게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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