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한국공인회계사에서 윤승한 상근행정부회장이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로 회계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회계법인뿐만 아니라 기업분석을 소홀히 한 신용평가사, 은행, 증권사 등의 전문가 집단, 회계를 전혀 모르는 이들을 감사로 앉힌 이들이 모두 반성해야 한다.”
지난 7일 <한겨레>와 만난 윤승한(59) 한국공인회계사회 상근행정부회장은 ‘회계의 신뢰위기’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현재 검찰은 2010~2015년 대우조선의 회계 감사를 담당했던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을 수사 중이다. 부실을 분식회계로 덮어 투자자와 국민의 눈을 속였던 대우조선은 국책은행들이 4조2천억원을 쏟아붓고도 정상화가 안 돼 최근 추가 출자전환 얘기가 나오는 실정이다.
윤 부회장은 금융감독원에서 회계감독국장, 기업공시국장, 기획조정국장 등을 거치며 국내 기업의 전자공시시스템(DART)을 설계했다. 그는 서울 서대문구 한국공인회계사회 사무실에서 진행된 이번 인터뷰에서 회계의 신뢰위기와 관련해 “시장 참여자들이 누구도 제 역할을 안 한다”고 비판했다. 또 스위스 국제경영개발(IMD) 회계투명성지수 평가에서 한국이 61개국 가운데 꼴찌에 가깝다고 전했다.
윤 부회장은 기업 내부감사 자리는 회계를 모르는 ‘낙하산’이 차지하고 외부감사는 회계법인 간 수주 경쟁으로 투명성이 흔들리는 것을 문제로 꼽았다. 그는 “우리는 감사받는 사람이 제멋대로 하게 되어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진짜 회계를 알고 경영을 감시할 사람을 내부감사 자리에 앉히면 회사 최고경영자(CEO), 재무책임자(CFO)가 장난을 못 친다. 대우조선에 10년간 수없이 많은 감사가 왔다 갔지만 회계를 아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고 짚었다. 이어 “공공기관 등에 낙하산 감사를 임명하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 감사가 필요없다고 선언하고, 분식회계를 해도 된다고 암묵적으로 봐준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회계법인의 외부감사와 관련해서도 “경쟁이 심해지고 감사 보수도 떨어지다 보니 회계법인들도 어려워져 과연 전문가로서 자존심이 있나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고 꼬집었다.
앞서 대우조선은 전·현직 경영진이 연루된 수조원대 분식회계가 드러난데다 올해 상반기에만 1조2천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내면서 완전자본잠식에 빠졌다. 윤 부회장은 기업분석과 신용평가를 면밀하게 해야 할 은행권의 태도 역시 문제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시중은행들은 대우조선에 꾸준히 A∼AAA 수준의 신용등급을 매기다가 지난해 초에서야 B∼BBB 수준으로 낮췄다. 주채권은행이자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은 계속 A-를 유지하다 지난해 7월에 BBB-로 등급을 낮췄다. 오래도록 곪아온 분식회계 문제가 지난해 7월 터져나올 때까지 기업분석에 소홀했다는 얘기다. 이에 윤 부회장은 “대출해준 자금의 회수 가능성을 늘 가늠해야 하는 은행의 가장 중요한 업무가 기업분석”이라며 “주거래 은행이 정보를 많이 갖고서도 기업분석을 소홀히 하다가 썩은 팔을 잘라내야 할 시점을 놓친 뒤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신용평가사의 회계사, 증권사의 애널리스트 등 시장 참여자들이 동종 기업이나 외국 회사와 비교해 대우조선의 비정상적 흐름을 눈여겨봤다면 분식회계를 좀더 빨리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전문가들의 도덕적 해이 현상이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윤 부회장은 1996년 미국 유학 뒤 금감원에 돌아와 국내 전자공시시스템 설계를 주도했으며, 이는 국제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은 작업으로 평가받는다. 개발 당시는 800여개 상장사가 사업보고서만 12권씩 제출해 공시실에 비치해 열람하도록 하던 시절이었다. 2~3년 전 사업보고서는 아예 창고에 처박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제대로 재무분석을 하려면 재무제표 등을 누구나 쉽게 검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시스템 개발에 매달렸다고 한다.
윤 부회장은 현재 사단법인 한국엑스비아르엘(XBRL·재무정보 바코드)본부 사무총장을 맡아 자동 재무분석을 할 기반을 만드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쉽게 재무분석을 하고 전문가들도 비재무적 정보까지 활용해 기업분석을 함으로써 국내 회계 투명성이 회복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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