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증가세가 빠르고 리스크 관리가 취약할 것으로 우려되는 은행에 대해서는 필요시 현장점검을 실시하겠다.”(진웅섭 금융감독원장, 17일 은행장 간담회)
“사회적 비난을 초래할 수 있는 수준의 과도한 대출금리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지속해주기 바란다.”(진웅섭 원장, 21일 임원회의)
미국발 금리인상의 파고가 높아지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국내 대출금리 시장 점검에 나섰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가 미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미 국채금리가 급등세를 이어가면서 우리 시장금리도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다. 앞서도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죄기를 강조하고 나서자, 은행권이 이에 편승해 자금 조달비용이 올라가는 속도 이상으로 가산금리를 지나치게 올리는 것 아니냐는 눈총을 받았던 터였다.
금감원은 시중은행의 대출금리 산정체계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21일 밝혔다. 최근 치솟는 대출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일단 서면조사를 통해 금리가 합리적으로 산정됐는지 살펴본 뒤 문제가 발견되면 현장조사까지 하겠다는 태도다.
현재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의 경우 고정금리는 금융채 금리와 가산금리를 합해서, 변동금리는 대개 은행의 정기 예·적금 등 수신금리를 종합해 반영한 코픽스 금리에 가산금리를 합해서 결정된다. 여기에 급여 이체나 카드 사용 실적 등을 고려한 우대금리가 적용돼 최종 소비자금리가 나온다.
정부가 8월25일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하는 등 가계부채 관리에 나서면서 은행들은 가산금리를 올리고 우대금리를 줄이는 등 대출금리를 높이는 방식으로 대출의 속도와 양을 조절해왔다. 최근에는 코픽스 금리가 상승하는 등 자금 조달비용도 올라서 금리 인상을 부추겼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말에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데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짙어지고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규모 죄기에 나서는 상황까지 겹쳤다”면서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가산금리를 올리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6월 기준금리를 1.5%에서 1.25%로 내린 뒤 줄곧 그대로 유지해왔다. 하지만 은행들은 6월 이후 계속 가산금리를 올려서 주담대 금리(신규취급액 기준)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4대 시중은행의 가산금리는 9월 평균 1.46%로 8월 1.41%, 7월 1.31%, 6월 1.22%에 비해 오름세를 유지했다. 이러다 보니 연 2%대 대출상품은 자취를 감췄고, 연 5%가 넘는 상품도 등장했다. 이날 주요 시중은행의 주담대 상품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혼합형(5년 고정금리 뒤 변동금리) 상품 금리를 보면, 케이비(KEB)하나은행이 3.56~4.76%, 케이비(KB)국민은행이 3.39~4.69%, 우리은행이 3.31~4.61%다. 이와 유사한 신한은행의 금융채 5년 기준 고정금리 상품도 금리가 3.51~4.81%에 이른다. 이 기간 은행들의 1년짜리 정기예금 등을 보면 수신금리 인상은 상대적으로 더딘 편이었다. 은행이 ‘땅 짚고 헤엄치기’식 영업으로 높은 마진을 얻는다는 비판에 금리 공시를 바꾸기도 했다. 하나은행은 최근 대출상품의 금리를 누리집에 공시하면서 최저 신용등급(15등급)을 기준으로 최고금리를 보여주다가, 신용 1등급 기준 최저금리를 볼 수 있도록 바꿨다. 하나은행은 “기계적으로 대출 금리를 보여주다 우대금리 등이 반영되지 않아 비현실적이라는 얘기가 있어 변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병진 금감원 은행감독국장은 “시장원리에 따라서 금리를 정하는 게 원칙이지만, 합리적으로 금리를 산정한 것인지 살펴볼 계획”이라고 말해, 사실상 시장에 경고를 보냈다.
하지만 금융당국 태도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도 있다. 한 시중은행 연구소의 연구위원은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에 나선 상황에서 은행들은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금리 인상 비판이 나오자 금융당국이 금리 점검에 나서는 등 좌충우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금리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치밀한 대책을 갖지 못해 나오는 모습이다”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금융당국은 ‘은행의 자율성·책임성 제고 방안’의 하나로 “금리·수수료 등 가격변수는 시장에서 자율 결정하는 금융 관행을 확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정훈 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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