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경기 회복세를 짚으며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내비쳤다. 다만 현 기준금리 수준은 적절하다는 뜻도 밝힌 터라 금리 인상이 조기에 단행될 여지는 낮아 보인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1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부에서 열린 창립 제67주년 기념행사 기념사에서 “앞으로 경기 회복세가 지속되는 등 경제 상황이 보다 뚜렷이 개선될 경우 통화정책 완화 정도의 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 이런 가능성에 대한 검토를 면밀히 해나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이 금리를 내리기 시작한 2012년 7월 이후 총재가 나서 금리 인상 여지를 내비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총재의 이날 발언은 올해 들어 변화하고 있는 국내외 경제 환경과 밀접하게 닿아있다. 미국 등 선진국 중심으로 경기가 점진적 회복세를 타면서 국내 기업들의 수출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고, 그에 따라 국내 설비투자도 활기를 띄는 흐름이다. 전반적인 경기 국면을 보여주는 통계청의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해 10월(100.2) 이후 4월 현재(101.0)까지 완만한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총재도 “우리 경제는 소비회복세가 여전히 완만하지만 수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투자도 호조를 보이면서 성장세가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서 올해 성장률이 4월 공표 전망치(2.6%)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경기에 대한 낙관적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새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 방안이 실행에 옮겨지면 성장세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올해 들어 돈을 거두는 긴축 정책 의지를 뚜렷히 드러내고 있는 상황도 저금리를 그대로 지속하기엔 한은으로선 부담이다. 한-미 간 금리 차이가 줄어들거나 역전될 경우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자금이 국외로 이탈하면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높아질 우려가 있다. 미 연준은 지난 3월 금리를 0.25%포인트 한 차례 올린 데 이어 오는 14일에도 추가 인상을 저울질 하고 있다. 시장 예상대로 미국이 이번달 금리를 추가 인상하게 되면 한-미 간 금리는 1.25%로 같아진다.
다만 한은의 금리 인상이 조만간 들이닥칠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주열 총재는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내비치면서도 “최근 성장세가 확대되고 있지만 성장경로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고 수요측면 물가상승 압력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수출과 투자가 개선 흐름을 보이고는 있으나 현 단계에선 그 흐름이 지속될지 여부가 다소 불확실한 데다 가계 소비가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있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다. 10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도 금리 인상에 부담요소다. 금리 인상이 취약 가구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는 탓이다.
한편 이 총재는 조만간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만날 예정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거시 경제정책의 투톱이 가지는 첫번째 회동이다. 이 총재는 “부총리 일정이 바쁘신데 날짜를 서로 말하고 있다. (16~18일 제주에서 열리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회의 전에 만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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