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은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큰 악재라도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 있으면 주가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반대로 상황이 불분명할 경우 작은 악재에도 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
주식시장 역사상 최고의 악재는 금융실명제였다.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시장이 요동칠 정도였는데, 그 때문에 처음 얘기가 나온 이후 두 번이나 도입하려다 실패했다. 문제는 시행이 결정되고 난 이후인데,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방안이 발표되고 열흘도 지나지 않아 주가가 오르기 시작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때까지 상승이 이어졌다. 금융실명제 시행으로 오랜 시간 계속돼 온 불확실성이 사라진 덕분이었다.
<워싱턴포스트> 기자인 돈 오버도퍼가 쓴 <두 개의 한국>이란 책이 있다.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남북한과 미국의 외교 관계를 정리한 책이다. 이를 보면 북한과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상황에서도 왜 주식시장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지 알 수 있다. 너무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인데,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과거에 그보다 더 심각한 사례가 있어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경험을 이용해 북한 문제로 인한 불확실성을 제거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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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이 반복되는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도 북핵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주식시장은 처음 겪는 일에 대해서는 실제보다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반면 한번 경험한 일은 과다할 정도로 평가절하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습성은 불확실성과 관련이 있다. 생소한 상황이 벌어져 시장 전반에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판단할 경우, 투자자들은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 움직이는데 이 때문에 주가의 반응이 커진다.
북핵 문제가 두 달 가까이 계속되면서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남겼다. 8월에 우리 시장의 하락 폭이 다른 나라보다 컸던 게 대표적인 사례다. 9월이 됐지만 아직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 북핵에 따른 리스크가 더 커졌기 때문인데, 주식시장도 상황을 수습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다.
상황이 유동적이지만 주식시장에서 북핵 문제의 정점은 지나간 것 같다. 북핵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이 아니다. 오랜 시간 투자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재료로서 신선함이 사라졌기 때문인데, 영향력이 스스로 약화되는 형태로 정리되고 있다. 앞으로 시장이 얼마나 빨리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느냐는 시장 여건의 개선 정도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국내외 경제가 회복세를 지속하는 거나 미국의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는 건 긍정적이다. 이를 기반으로 종합주가지수가 2300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재반등에 성공할 경우 시장에서 북핵의 영향력은 사라질 것이다.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진 않다.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