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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증권

‘신의 직장’ 금감원은 왜 채용비리 온상이 됐을까

등록 2017-10-06 10:54수정 2017-10-06 16:29

금융권 고위 인사가 비리 유발자
채용 청탁자 처벌해야 재발 방지
금융감독원은 취업준비생에게 ‘신의 직장’으로 통한다. 공무원에 준하는 복지 혜택을 받으면서도 연봉이 일반 금융회사 수준으로 높기 때문이다. 금융공기업 가운데 한국은행 다음으로 입사 경쟁률이 높은 이유다. 이런 곳일수록 채용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해야 하는데,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 금감원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적발된 비리는 2016년 5급 일반 직원과 민원처리 전문인력 채용 과정에서 발생했다. 금융계 고위 인사 자녀나 금감원 근무 경력이 있는 지원자를 위해 ‘맞춤형’ 채용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청탁 대상자가 필기시험에 탈락하면 필기 합격 정원을 조금 늘려 구제한 뒤 면접 점수를 높게 줘서 합격시키거나, 인성검사와 ‘세평’을 조작해 특정 지원자를 합격시키거나 탈락시켰다.

금감원은 앞서 2014년에도 변호사 특채 과정에서 비리가 발생해 검찰 수사를 받았다. 당시 최수현 금감원장의 절친인 임영호 전 의원의 아들을 특혜 채용한 혐의로 김수일 전 부원장보 등 고위 임원 2명이 기소됐다.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지난달 13일 1심에서 모두 실형이 선고됐다. 채용비리로 고위 임원들이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금감원 개원 이래 처음이었다. 그만큼 금감원 구성원들이 받은 충격은 컸다. 충격과 자괴감 속에서도 직원들은 검찰 수사가 강력한 ‘예방주사’가 되기를 바랐다. 검찰 수사의 아픔을 기억해 다시는 채용 관련 비리가 발생하지 않는 조직으로 거듭나기를 원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예방주사’는 효과가 없었다. 왜 그럴까.

금감원 안팎에선 ‘채용비리 유발자’에 대한 처벌이 전혀 없었던 것을 주된 이유로 꼽는다. 비리 수행자만 처벌하고 비리 원인 제공자는 처벌하지 않으니 ‘청탁’이 근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강직한 실무자라도 힘 있는 자의 청탁을 뿌리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변호사 채용비리 사건에서 원인 제공자는 최수현 전 원장이었다. 최 전 원장은 실무 담당자한테 친구의 아들 채용 건을 ‘잘 챙겨보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최 전 원장을 기소하지 않았다. ‘잘 챙겨보라’는 말을 부당한 지시로 보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최 전 원장의 말은 사실상 ‘채용시키라’는 지시로 이해하는 게 상식에 더 가깝다. 원장이 친구 아들 건만 콕 찍어 잘 챙겨보라고 한 다른 합당한 이유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된 채용비리도 이와 똑같은 구조였다. 금감원 고위 임원을 지낸 국내 금융지주회사 대표가 자신과 함께 근무했던 한 국책은행 고위 간부의 아들 채용 건을 ‘잘 챙겨봐달라’고 부탁했다. 이 대표는 당시 금감원 채용 담당 실무국장은 물론 고위 임원들과도 가까운 사이였다. 그는 감사 결과 발표 뒤 주변에 ‘합격 여부에 대해 알아봐달라고만 했는데 금감원에서 오버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금감원 안에서는 당시 실무국장이 감사에서 문제가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오버’할 인사는 결코 아니라는 말이 나온다. 그는 이번 감사로 면직이라는 중징계를 당할 처지에 놓였다. 더이상 금감원은 물론 금융계에서 자리를 잡을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 그가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무리수를 둔 배경에 금융지주회사 대표와 전·현직 금감원 고위 임원들의 ‘커넥션’이 작용했다는 말이 나온다.

검찰은 감사원의 요청에 따라 이번 채용비리에 대해서도 수사에 착수했다. 금감원 고위 임원들의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등 검찰 수사의 강도는 일단 세어 보인다. 하지만 이번에도 비리 수행자만 처벌하고 비리 원인 제공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일을 반복한다면, 취준생을 울리는 채용비리는 결코 뿌리뽑을 수 없을 것이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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