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1천여개 차명계좌에 숨겨둔 예금과 주식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세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않았다는 지적과 관련해(
▶관련기사: 이건희, 차명계좌 실명전환 않고 4조4천억 싹 빼갔다), 금융위원회가 당시 이 회장 쪽이 돈을 인출하는 과정에서 금융회사들이 원천징수해야 할 세금을 누락한 일이 없는지에 대한 현장 점검에 나설 방침이다. 금융위가 ‘금융권 적폐 청산’을 위해 지난 8월 말 꾸린 금융행정혁신위원회(금융혁신위)도 당시 금융위의 유권해석이 적정했는지 따져보기로 했다.
금융위 고위 간부는 26일 <한겨레>에 “이건희 회장 쪽이 차명계좌에 들어 있던 자금을 인출하는 과정에서 금융회사들이 금융실명법상 의무를 충실히 다했는지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제법)에 따르면, 실명전환 자산의 경우 이자·배당소득의 최대 99%(소득세·주민세)를 금융회사가 원천징수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2008년 당시 이 회장이 차명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는 과정에서 금융회사들이 원천징수해야 할 세금을 누락한 일이 있는지, 실명확인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는지 등에 대한 점검에 나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금융위 방침은 지난 16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나왔던 금융위의 답변 태도와 달리, 삼성 차명계좌와 관련한 과세 이슈를 전향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의중이 실린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국정감사에선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금융위가 이건희 회장 쪽이 차명계좌에서 4조4천억원을 세금을 내지 않고 찾아갈 수 있도록 특혜를 줬다”고 주장한 데 대해,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금융위가 이 회장에게 돈을 찾아준 적이 없다. 차명계좌도 (명의자의) 실명계좌이므로 금융실명법상 실명전환 대상이 아니다”라며 박 의원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했다.
이와 더불어, 금융위의 민간 자문기구인 금융혁신위도 26일 이 사안을 공식 안건으로 채택하기로 함에 따라 추이가 주목된다. 윤석헌 금융혁신위원장(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은 “금융위 국정감사에서 (삼성 차명계좌와 관련해) 금융실명제법 유권해석 논란이 불거짐에 따라, 관련 사안을 공식 안건으로 올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윤 위원장은 혁신위 활동 시한이 불과 한 달 정도만 남은 상황에서 이런 결정을 한 데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등 매우 중대한 사안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금융혁신위는 최근 박근혜 정부 때 이뤄진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의 은행업 인가 과정을 따져본 뒤 문제가 있다는 권고안을 낸 데 이어, 이명박 정부 때 주목받았던 ‘키코 사태’(금융기관의 사기적 파생금융상품 판매로 상당수 중소기업이 큰 손실을 입은 사건)도 살펴보는 중이다. 금융권에선 혁신위를 ‘금융판 적폐 청산 기구’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재 논란의 쟁점은 2008년 조준웅 삼성 특검이 확인한 삼성 임직원 명의의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에 들어 있던 재산을 ‘비실명 재산’으로 볼 것인지 여부다. 박용진 의원 쪽은 이를 비실명 재산으로 보고 관련 법에 따라 실명전환 과정에서 정해진 이자·배당소득세를 징수했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금융위 쪽은 차명계좌도 명의자의 실지 명의 계좌이기 때문에 해당 계좌에 담긴 재산을 비실명 재산으로 보기 어렵다고 맞선 것이다. 금융위는 ‘차명계좌도 실명계좌’라는 판단을 담은 유권해석을 계속 유지했다고 밝혀왔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