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구 금융위원장은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건희 삼성 차명재산에 대한 차등과세와 관련한 입장을 공식화했다. 사진은 지난 16일 오후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는 모습.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금융위원회가 30일 수사당국에 의해 적발된 차명계좌에 든 금융재산은 ‘비실명자산’으로 차등과세(이자·배당소득의 90% 원천징수) 대상이라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지난 16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재산을 비실명자산으로 볼지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진 뒤 2주 만에 나온 정부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위는 종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태도를 보이면서도, ‘기존 입장의 재확인’이라거나 ‘과세는 국세청 소관’이라며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한 모양새다.
이날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검찰 수사나 금융감독원 검사 과정, 국세청 세무조사 결과 차명계좌로 확인된 경우 비실명자산으로 보고 원천징수세율을 90%로 (과세)하는데 동의하느냐”라고 묻자,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동의한다”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이어 “(차명계좌에 든 금융재산을 비실명자산으로 봐야하는지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던 종합편람, 업무해설 등도 일관성있게 정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최 위원장의 발언 직후
보도자료를 내어, “금융당국은 사후에 객관적 증거에 의해 확인된 차명계좌는 차등과세 대상이라는 원칙을 유지해왔다. 위원장의 답변은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차등과세 대상이 되는 차명계좌를 보다 명확하게 유권해석을 하겠다는 취지”라며 “과세당국이 유권해석을 요청하면 차등과세 대상임을 분명히 하겠다”고 재차 확인했다.
이런 금융위 쪽 설명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쪽이 적지 않다. 기존 해석을 사실상 변경한 것과 같은데 ‘기존 입장 재확인’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 금융위는 2008년 4월 광주지방국세청에 보낸 질의 회신에서 “1993년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개설된 계좌는 도명(타인의 명의를 몰래 가져와 개설한 계좌)이든 차명이든 간에 모두 실명계좌이고, 그에 따라 비실명자산이 아니다”라고 답변한 바 있다.
당장 과세에 나서야 하는 국세청은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한승희 국세청장은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관련 질문을 받자, “국민적 관심사항이어서 저희도 (과세 여부를) 연구 검토하고 있다. 금융위와 기재부 등과 협의해서 적법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속내는 불편하다. 국세청 쪽은 최근 “금융위는 과징금 부과 여부를 따질 때는 실명자산으로 해석하면서, 차등과세를 적용할 때는 비실명자산으로 해석하려 한다. 동일 자산에 대해 서로 상반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모순”이라는 의견을 국회 기재위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에선 금융위가 과거 소극적 해석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려 유권해석을 수정하거나 변경하는 대신 ’재확인’이란 표현을 쓴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예로 금융위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08년에 차명계좌에서 돈과 주식을 빼가는 과정에서 금융기관이 세금을 원천징수하지 않은 것은 금융회사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금융위 고위 간부는 “이 회장 쪽이 금융자산을 가져갈 때 금융회사 어떤 곳도 관련 세금을 징수해야 하는지 여부를 금융위에 질의한 기록이 없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1천여개에 달하는 이 회장 차명계좌에 대한 점검에 나설 방침인데, 이에 대해서도 금융회사에 책임을 미루려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회장 차명계좌 53개를 운용했던 우리은행 쪽은 “모든 은행 담당자들은 차명거래도 비실명자산이 아니라고 봐왔다. (이 회장 차명재산에 대한 원천징수 문제와 관련해) 해마다 실시하는 금감원 감사나 국세청 감사에서도 지적된 선례가 없다”고 밝혔다. 삼성증권 쪽도 “2008년 당시나 지금이나 모든 금융회사들은 동일하게 (차명재산은 실명자산으로 보고) 일을 처리한다”고 말했다.
김남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부회장은 “뒤늦게 나마 금융당국이 모호했던 해석을 분명히 다시 한 것은 의미가 있다”며 “하지만 그간 상당한 혼란과 오해를 불러오는 등 행정상 과오는 그대로 묻히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금융권 적폐 청산을 위해 구성된 금융위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위원장 윤석헌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는 금융위의 일관되지 못했던 금융실명제법 유권해석이 나오게 된 배경 등을 살펴볼 예정이다.
김경락 박수지 방준호 정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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