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가 없이는 현재도 존재할 수 없다. 주식 시장도 마찬가지다. 지금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유례없어 보이지만 찾아보면 다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국내 주식 시장에서 중소형주가 처음 집단으로 상승한 건 1995년 자산주부터다. 재무제표에 미처 반영되지 않은 자산을 주가에 반영하자는 게 당시 상승 논리였는데, 삼부토건이 첫 주자였다. 보유하고 있는 호텔의 가치를 재료로 주가가 네 배 넘게 상승했다.
자산주로 시작된 중소형주 상승은 시간이 흐를수록 대상이 늘어났다. 환경 관련주도 그중 하나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함에 따라 환경오염물질 배출 기준이 강화될 거란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수질에서 대기까지 다양한 기업들이 환경 관련주로 꼽혔는데, 중요한 관련 기업만도 83곳으로 당시 상장 기업의 12%에 이를 정도였다.
생명공학도 이때 나왔다. 해당 주식들이 변화를 거쳐 지금의 바이오로 발전했다. 생명공학은 신약 개발로 이름을 바꾸면서 본격 상승하기 시작했는데, 1996년에 종합주가지수가 21.4% 하락하는 동안 제약업 지수는 23.5% 상승할 정도였다. 2년 동안 주식 시장을 끌고 가던 중소형주는 1997년에 접어들면서 기세가 꺾였다.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하락이 특히 빨라졌는데, 상당수 종목이 열흘 연속 하한가를 기록하고도 매수자를 찾지 못했다.
또 한 번은 아이티(IT) 거품(버블)이다. 2000년에 코스닥 시장을 중심으로 중소형주 강세가 나타났다. 당시 인기있는 코스닥 기업의 경우 시가총액이 거래소의 웬만한 대기업 계열사 전체를 합친 것보다 컸다. 이 열풍의 배경에는 정부가 있었다. 대기업이 외환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낙인찍히자 정부가 경제를 끌고 갈 새로운 파트너를 찾게 됐는데 그래서 선택된 게 벤처다. 코스닥 상승은 2000년 전 세계적인 아이티 거품 붕괴로 끝났는데, 주가가 한번 꺾이자 엄청나게 빠르고 강하게 내려왔다.
처음에 사업이 잘되는 것처럼 보이던 신생 산업이 어떤 단계에 이르면 더는 발전하지 못하고 깊은 정체에 빠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인터넷 보급이 본격화되던 시기 포털도 그중 하나였다. 2000년 최고 주가일 때 5조원에 육박하던 다음의 시가총액이 그해 말에 18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다. 당시만 해도 포털 업체가 난립하는 형태여서 다음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시장을 휩쓸고 있는 바이오도 이런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이번이 바이오가 산업으로 자리잡고 처음 맞는 주가 활황이다. 아직 바이오의 수익성이 제대로 검증된 것도 아닌데 투자 종목은 난립하고 있어 정리가 필요하다. 진정한 상승은 인터넷 산업처럼 막연한 기대에 의한 호황이 끝나고 생사를 가르는 불황을 겪은 뒤 살아남은 기업을 중심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종우 아이비케이(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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