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정부가 원금 1천만원 이하 대출을 10년 동안 상환하지 못한 159만명에 대해 원리금 전액을 탕감해주는
정책을 발표하자,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는 언론보도가 뒤따랐다. 빚을 꼬박꼬박 갚고 있는 사람들의 박탈감을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이런 주장을 들으면 두 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2013년 국제통화기금(IMF) 조사단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조사단은 한국의 가계부채 상황에 대해 한국의 금융당국 관계자와 전문가들을 집중 인터뷰를 하면서 가계대출 연체율 데이터에 의구심을 드러냈다고 한다. 당시 이 사실을 귀띔해준 당국자는 “가계부채는 세계적 수준으로 많은 편인데 연체율은 고작 1%대에 머무르고 있으니 그들 눈에는 매우 이상하게 여겨졌을 거다. 한국 사람들은 밥을 굶더라도 빚은 갚을 정도로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빚을 정말 열심히 갚는다”고 말했다.
두번째 기억은 박근혜표 빚탕감 정책인 국민행복기금 도입 1년 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주관한 토론회에 패널로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패널에는 국민행복기금 실무자도 참석했다. 그는 국민행복기금이 사들인 장기 연체 채권의 채무자를 만나서 탕감 뒤 남은 원금 상환 계획을 짜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 “국민행복기금을 도입할 때 수많은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도덕적 해이 우려를 제기했는데, 실무자로서 채무자들을 만나보니 어땠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현장을 한 번도 안 온 사람들이나 그런 주장을 펴는 거죠. 제가 보기에도 도저히 빚 갚을 능력이 안 되는 분들인데 그래도 남은 원금(국민행복기금은 이자는 전액 탕감하고 원금은 최대 70%까지 줄여주는 제도였다)은 갚겠다고 하면서, 너무 고맙다고들 하시더라고요. 적어도 제가 만나본 채무자 중에 돈을 숨겨 놓고 안 갚는 분들은 못 봤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이번 대책을 발표하면서 한
발언은 파격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자기 힘으로 채무를 상환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고 방치하는 것은 이런 고통까지 가보지 않은 비교적 여유 있는 사람들의 또다른 도덕적 해이가 아닌가.”
그래도 도덕적 해이를 운운하려 한다면 2007년 이전의 금융권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떠올려 봤으면 한다. 은행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당시 각 은행은 ‘리딩뱅크’ 자리를 차지하려고 치열한
자산 경쟁을 벌였다. 지금은 한 금융협회장이며 검투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당시 한 시중은행장이 2006년 1월 영업본부장들에게 단검을 나눠준
일화는 유명하다. “전쟁터에 나가는 심정으로 대출을 끌어오라”는 메시지였다. 그야말로 ‘묻지마 대출’ 전성시대였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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