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이오(CEO·최고경영자) 승계 프로그램이 형식적이고 불공정하다.”
이번엔 금융감독원장이 나섰다. 최흥식 금감원장은 13일 언론사 경제부장들과 한 간담회에서 “전 금융사를 대상으로 지배구조를 점검하기 위한 검사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금융지주사 회장 선출 과정 문제를 거론한 데 이어 금융당국 수뇌부가 ‘핑퐁 게임’을 하듯 금융사 시이오 승계 프로그램을 겨냥한 날선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최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시이오 스스로 (자신과) 가까운 분들로 이사회를 구성해 본인 연임에 유리하게 짠다는 논란이 있다”고 말한 데 이어, 지난 11일에도 “현직이 자기가 계속할 수 있게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금융사에 대한 검사권을 가진 최흥식 원장은 올해 벌인 지배구조 검사 결과까지 일부 공개하면서 조목조목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올해 들어 금융회사들(의 지배구조를) 한번 살펴봤다. 2015~2016년 지적된 사항들이 충실히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파악했다. 또 일부 금융지주사에 대해 검사한 결과, 시이오 승계 작업에 대한 잡음이 많았고 회장 후보군을 구성하는 데 경영진이 과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고 밝혔다. 금감원이 이 문제와 관련해 검사를 벌인 곳은 케이비(KB)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비엔케이(BNK)금융 등 4곳이다.
특히 최 원장은 금융사의 내부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이 부실한 문제를 정조준했다.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이 전혀 없다. (금융사들이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후보군에 든 인사들은 여러 분야에 경험을 갖지 못했고 가질 기회도 주지 않았다. 결국 (다양한 경험이 있는) 현직 회장만 최종 후보로 남는다.” 지난달 말 케이비금융은 윤종규 회장이 단독 추천돼 새 임기를 시작했고, 내년 4월로 예정된 하나금융 회장 선출도 김정태 현 회장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두 시이오의 대세론이 가능한 배경에는 경쟁력 있는 다른 후보가 나오기 힘든 구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 원장은 현직 회장이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에 참여하고 있는 문제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현직 회장의 회추위 참여는) 기득권 문제로 본다. 연임 의지가 있다면 남의 의혹을 사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그는 “(현직 회장이) 회추위에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회추위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회추위에서 나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김정태 회장이 2015년 연임 결정 과정에서 회추위에 참여는 했으나 본인 추천 안건 의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셀프 연임’이 아니라는 하나금융 쪽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정상적 사외이사 활동을 위해선 사외이사 평가 시스템을 손질해야 한다는 견해도 내놨다. 최 원장은 “(경영진을 견제해야 하는)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필요하지만, 정작 사외이사를 평가하는 건 경영진”이라며 “사외이사는 사외이사들끼리 활동을 평가하도록 하고 교체를 할 때도 한번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외이사 활동에 대한 평가를 경영진이 하는 구조에선 사외이사들이 경영진 입맛에 맞게 활동할 여지가 커지면서 ‘경영진 견제’라는 본연의 구실을 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 밖에도 최 원장은 “시이오 승계 프로그램은 원샷으로 가면 안 된다. 상시 프로세스로 가야 하지만 지금 (금융사들은) 이런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며 회장을 선출할 때만 회추위가 가동되고 선임 이후에는 사실상 활동이 중단되는 현재 승계 프로그램의 문제를 꼬집었다.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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