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달 13일 가상통화 대책을 발표한 지 보름 만에 고강도 규제책을 꺼내든 건 좀처럼 투기 과열 현상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가상통화 거래소 폐쇄’라는 극한 처방까지 공식 거론한 배경도 과열 양상이 지속되는 시장을 향한 강한 경고로 읽힌다.
실제로 국내 가상통화 시장은 다른 나라에 견줘서도 ‘이상 현상’을 보여왔다. 국경을 넘어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거래소의 소재지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아야 하지만, 국내 거래 가상통화 시세는 다른 나라에서 거래되는 것보다 10~20%가량 높게 형성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시세정보 사이트 ‘코인마켓’ 자료를 보면, 28일 오후 3시 현재 국내(빗썸 기준) 비트코인 값은 미국(비트파이넥스)보다 30%나 더 비싸다. 거래 규모도 세계 20위권 안에 국내 거래소가 4곳이 될 정도로 크다. 전세계 가상통화 시장 중 국내 시장에서 쏠림 현상이 유독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우선 국내 가상통화 거래 시장에 자금 유입을 억제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내년 1월 중에 가상통화 거래에 실명제가 도입된다. 은행에 개설된 본인 실명이 확인된 계좌에서만 가상통화 거래를 위한 자금 입출금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시스템이 갖춰지기 전까지 기존 거래자들은 출금만 가능하고, 신규 거래자들은 가상계좌 자체를 만들 수 없다. 다만 해당 시스템을 이미 구축한 농협과 신한은행에선 제약 없이 거래가 가능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거래소를 직접 찾아가 입출금하거나 무통장 입금할 수 있지만 거래 비용이 커지기 때문에 많이 활용되지는 못할 것”이라며 “실명거래시스템이 구축되면 (가상통화 매매 차익에 대한) 과세를 위한 세원 파악이 가능해지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가상통화 시장에 유입되는 신규 수요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다.
‘불건전 거래소’에 대한 퇴출 방안도 추진된다. 개인정보 유출 혹은 해킹 사고가 났거나 미성년자 거래 금지 등 정부 권고를 따르지 않은 거래소에 은행들이 자금 입출금 서비스를 못 하도록 했다. 이미 세계 1위(거래금액 기준) 가상통화 거래소인 빗썸은 대규모로 개인정보가 유출된 적이 있고 또다른 거래소인 유빗은 최근 해킹에 따른 고객 자산 도난 사고로 파산 절차를 밟고 있다. 현재 거래소를 상대로 진행 중인 공정거래위원회의 약관 심사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보안 점검에서 일정 수준에 못 미치는 거래소는 은행권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
이는 정부가 거래소를 직접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 은행권에 대한 행정지도를 통한 간접 규제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금융권 점검회의’를 열어 “불법자금의 문지기 역할을 해야 하는 은행권에서 사전에 충분한 검토 없이 가상통화 취급업자에게 금융서비스를 앞다퉈 제공한 것은 자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정부 방침(행정지도)에 충실히 협조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정부는 모든 거래소를 폐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현재는 거래소를 폐쇄할 근거가 없어, 별도 특별법을 제정해 폐쇄한다는 게 법무부 쪽 제안이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가상통화 (시장) 동향을 봐가며 법무부 의견을 포함해 모든 가능한 수단을 열어놓고 대응 방안을 검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가격은 이날 정부 대책 발표 직후 20% 가까이 급락했다가 다시 10%가량 반등했다. 비트코인 가격은 발표 직전 1코인당 2160만원에 거래되다가 40분 만에 1940만원대까지 떨어졌지만 오후에 2천만원 선을 회복했다. 정부의 으름장에 견줘 시장이 받은 충격은 미미했던 셈이다. 김진화 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공동대표는 “새로운 내용은 없고 어조가 강해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7일 출입기자단과의 송년회에서 “2000년 초반 아이티(IT) 버블 때 아이티 기업은 형태가 있었지만 비트코인은 그렇지가 않다. 나중에 비트코인은 버블이 확 빠질 것이다. 내기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가 향후 비트코인에 대한 과세 방안을 내더라도 “금융당국이 (이를) 제도권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김경락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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