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19일 ‘자본규제 등 개편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금융은 실물 경제 곳곳에 막힘 없이 자금을 공급해 경제의 역동성에 기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발족한 이 태스크포스는 이날 그간의 논의를 마무리한 뒤 은행권의 자기자본규제와 예대율 규제 개편 방안 등을 확정했다. 제공 : 금융위원회
금융당국이 가계와 부동산에 쏠린 자금 흐름을 바꾸기 위해 금융권 자본 규제를 전면 개편한다. 가계대출이나 부동산 대출에 자금을 빌려 줄 때 금융기관들이 자본을 좀더 쌓도록해 대출에 부담을 늘리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가계 대출을 억제하는 효과는 가져올 수 있지만, 이를 통해 정부가 기대하는 생산적 부문으로의 자금 이동이 얼마나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은 21일 ‘생산적 금융을 위한 자본 규제 등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가장 큰 자금줄인 은행의 자본 규제 개편이다. 우선 이르면 다음달부터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계산에서 분모에 들어가는 ‘위험가중자산’을 구할 때 담보인정비율(LTV)이 60%가 넘는 주택담보대출 자산의 위험가중치를 현재보다 최대 2배로 높인다. 이렇게 되면 은행은 해당 자산을 줄이거나 자본을 더 쌓아야 한다. 시중은행들은 비아이에스비율이 규정상 8%가 넘어야 하고 10%는 넘어야 시장에서 ‘건강한 은행’으로 분류된다. 금융위는 위험가중치 조정에 따라 은행들의 평균 비아이에스비율이 0.14%포인트 준다고 밝혔다.
‘경기대응 완충자본’이란 새로운 자본 규제도 도입된다. 금융위가 가계부채 증가속도나 경제상황 등을 고려해 주기적으로 ‘적립 비율’을 결정하면 은행들이 가계대출 비중에 따라 자본을 추가 적립토록 하는 제도다. 이 규제에 ‘경기대응’이란 수식어가 붙은 데서 보듯이 금융위는 경기 회복세에 가계대출이 크게 늘어날 경우 적립 비율을 높여갈 방침이다. 이 규제는 은행들의 준비 여건 등을 고려해 내년부터 시작된다.
오는 7월부터 ‘예대율 규제’도 바뀐다. 현재는 기업 대출이나 가계 대출 모두 그 성격과 무관하게 대출 총액이 예금(원화) 총액을 넘지 못하도록 규제(예대율 100%)하고 있다. 이번에 가계 대출에 좀더 높은 가중치를 두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은행들마다 대출 자산 총액과 예수금 총액이 같더라도 가계 대출 비중이 크면 예대율은 올라가게 돼 규제 비율을 넘어설 수 있다. 이런 은행들은 가계 대출을 줄이거나 예금을 좀더 확보해야 한다.
금융위는 보험권이나 저축은행, 상호금융조합 등 제2금융권에도 은행권의 자본규제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규제를 손볼 예정이다. 금융위는 이런 방식으로 5년 안에 가계대출 규모가 최대 40조원 정도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자료 : 금융위원회 (※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자본 규제 개편은 가계의 주택담보대출로 상징되는 비생산적인 분야로 쏠려가는 자금의 물줄기를 기업 쪽으로 방향을 돌리기 위해서다. 실제 한국은행의 자금순환표를 보면, 2012~2016년 ‘가계 및 비영리 단체’ 부채의 연평균 증가율은 7.9%로 민간 기업의 부채 증가율(4.4%)을 크게 웃돌고 있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금융이 실물 경제의 역동성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자금 중개의 유인체계가 효과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며 “이번 자본 규제 개편방안은 금융의 ‘생산적 자금중개 기능’을 정책으로 구체화했다는 데 매우 의미가 크다”고 자평했다.
정부의 이런 구상이 기대 효과를 달성할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자금이 기업보다는 가계로 더 많이 흘러간 데는 자본 규제가 가계 대출에 더 유리하게 설계돼 있어서라기보다는 부동산이 여타 투자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보인 터라 가계의 자금 수요는 큰 반면, 기업들은 경기 불확실성 등으로 상대적으로 자금 수요가 적거나 증권시장과 같은 직접금융시장이 발달했고 기업 내부에 쌓아둔 유보금이 많은 터라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릴 이유가 적었기 때문이다.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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