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서울 중구 한 가상화폐 거래소 앞에서 한 시민이 시세 전광판을 보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법안을 준비중이라는 법무부에 발표에 급락했던 가상화폐는 이내 예전의 시세를 회복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오는 30일부터 가상통화 거래 실명제와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이 시행되면, 가상통화 거래소 구조조정이 시작될 전망이다. 다만 이런 구조조정은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2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과 실명제는 사실상 취급업자(거래소)에 대한 인가제를 도입한 효과를 낳게 될 것”이라며 “가이드라인을 충족하기 어렵거나 은행권과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서비스’ 계약을 맺지 못하는 취급업자들은 고객 확보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은행 등 금융회사와 마찬가지로 거래소에 면허를 부여하거나 거부할 권한은 없지만, 가상통화 거래소가 은행과 거래를 터야만 투자자를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감안하면 은행을 통한 ‘간접 인가제’를 도입한 것과 마찬가지란 뜻이다.
실제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에는 ‘인가 기준’과 비슷한 내용이 담겼다. 예컨대 가상통화 거래소는 자금 거래의 목적과 원천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하며, 투자자의 생년월일과 주소, 연락처와 같은 신원 정보를 확보해야 한다. 또 투자자별 거래 내역을 관리해야 하며, 거래소 고유 재산과 투자자 재산을 분리·관리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이런 조건을 모두 충족해 은행과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서비스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거래소는 손에 꼽을 것으로 본다. 자연스레 수십 개에 이를 정도로 우후죽순 난립해 있는 가상통화 거래소 시장이 재편된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은 꼼꼼하게 점검을 하면 실제 활동하는 거래소는 60곳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 23일 브리핑에서 “대략 30여개 존재하는 것으로 예상했으나 단지 며칠 동안 당국이 점검한 것만으로도 취급업소가 60개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한 중소 거래소 관계자는 “은행 부행장과도 면담했지만 기존 대형 거래소 네다섯곳을 제외하고는 실명계좌 서비스 제공이 어렵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다만 거래소 재편 속도는 매우 더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거래소 ‘옥석 가리기’가 당국이 직접 기준을 세워 인가를 내주는 방식이 아닌 은행을 통한 ‘간접 규제’를 동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간접 규제인만큼 그 효과도 즉각 나타나기 어렵다. 중소 거래소들은 업비트나 빗썸과 같은 대형 거래소들이 쓰던 은행의 ‘가상계좌’보다는 거래소 명의의 법인 일반계좌로 투자자들의 자금을 받아왔다.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은 법인 일반 계좌의 사용을 자금세탁 혐의가 있는 것으로 사실상 간주하고, 그런 혐의가 있을 땐 은행이 거래를 중지하거나 거절하도록 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거래가 중지될지는 미지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거래 중지나 거절은
2014년 관련 법 개정 때 들어간 내용이지만 지금껏 한 번도 시장에서 적용된 적은 없다. 이번에도 법인 계좌 신규 개설은 은행들이 거절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미 개설된 법인 계좌를 ‘자금 세탁 혐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거래를 중지시키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이 거래를 중지했다가 자칫 거래소와의 법적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은행들은 법인 계좌를 폐쇄하지는 못하고 금융정보분석원에 자금세탁 혐의거래 보고만 하는 데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이런 혐의거래가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되고, 실제 그 혐의가 확정적이어서 최종 사법당국에 의해 기소되기까지는 통상 2년이 걸린다.
중소 거래소 일부는 요건을 모두 충족해 ‘실명제’ 시장으로 올라올 여지도 있다. 실제로 후발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실명 서비스에 대비해 시스템을 잘 구축해놨다”고 말했다. 당장은 은행들이 이런 거래소들과의 계약 체결을 꺼리고는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거절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고유 재산과 고객 자산의 분리 관리 등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에 담긴 (사실상의 거래소 인가) 요건은 (거래소들의 모임인) 블록체인협회의
자율규제안에도 담겨 있는 내용인데, 이 자율 규제안을 만들 때 은행들도 검토 과정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은행이 자기 손을 거친 자율규제안을 충족한 거래소들의 계약 체결 요구를 마냥 외면할 명분이 적다는 뜻이다. 김경락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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