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건물. 한겨레 자료 사진.
금융당국의 거래 추적이 어려운 가상통화를 활용해 투자금을 몰래 빼먹은 금융사기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에 발생한 피해액만 150억원에 육박한다.
6일 금융감독원은 “보이스피싱 등으로 투자금을 편취한 금융사기범들이 거래의 익명성이 높은 가상통화를 활용해 피해금을 현금화한 사례를 다수 적발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이런 방식의 금융사기에는 대포통장과 보이스피싱, 가상통화가 두루 쓰였다.
먼저 사기범들은 취업이나 대출을 미끼로 한 보이스피싱 수법을 써서 피해자에게 대포통장으로 돈을 받았다. 이후 사기범들은 대포통장 명의인의 개인정보를 활용해 가상통화 거래소에 계좌를 열어 피해자들의 자금을 옮겼다. 이어 비트코인 등 가상통화를 사서 자신의 전자지갑으로 옮긴 뒤, 가상통화를 팔아 다시 현금화했다.
가상통화를 전자지갑에 넣었다기 다시 빼서 현금화한 이유는 금융당국이 이런 과정을 추적하기 어렵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또 1일 600만원, 건당 100만원 이상이 대포통장 의심 계좌에 입금될 경우, 다시 돈을 뺄 때 30분간 인출이 지연되는 것과 달리 가상통화는 제약이 없다는 점도 악용된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 자료.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금감원은 지난해 7월 이후 반년 간 이런 수법의 금융사기로 인한 피해액이 148억원이라고 밝혔다. 월별로 피해액을 보면, 지난해 9월과 10월에는 10~13억원 수준이었으나, 지난해 11월과 12월엔 각각 38억8천만원, 31억2천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비트코인 등 가상통화 값이 급등하던 시기에 관련 사기가 쏠린 것으로 보인다. 김범수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 팀장은 “자금 추적이 어렵고 대포통장 규제를 우회할 수 있다는 이유로 가상통화를 활용한 금융사기가 급증하고 있다. 금융회사에 가상통화 거래 계좌가 보이스피싱에 악용되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하도록 지도했다”고 말했다.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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