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대작의 자녀이거나 명문대 졸업생 혹은 남성이라면 우대합니다.’
금융감독원이 2일 공개한 ‘2013년 하나은행 채용비리 검사 잠정결과’는 이렇게 압축된다. 지원자의 역량보다는 출신 배경과 학벌, 그리고 성별이 당락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였다.
우선 하나은행은 동일한 직무에 대해 남녀 채용인원을 사전에 달리 정하는 등 차별을 둔 것으로 드러났다. 계량평가인 서류전형 단계에서부터 여성의 채용인원을 크게 줄여놓은 것이다. 2013년 상반기 공채에선 남녀 채용인원을 9.4(565명) 대 1(60명)로 선발하기로 계획을 짰는데, 실제 채용된 비율은 10.8(97명) 대 1(9명)이었다. 같은 해 하반기에도 남녀를 4(80명) 대 1(20명)로 뽑는 것으로 계획했으며, 실제로는 5.5(104명) 대 1(19명)로 뽑았다. 채용계획 자체도 남녀 차별이 심한데, 실제 선발과정에서는 여성 비중을 더 낮춘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성 지원자의 커트라인은 남성보다 월등히 높았다. 2013년 하반기 공채 서류전형에서 서울지역 여성 커트라인은 467점으로 남성(419점)보다 무려 48점이나 높았다. 이번 검사를 이끈 최성일 금감원 부원장보는 “남녀차별을 두지 않은 것을 전제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면 하반기 공채의 경우 남녀 성비는 1 대 1.04로 거의 차이가 없다. (차별이 없었다면) 서류전형 단계에서 여성 합격자는 619명이 늘고 남성은 그만큼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남성 지원자에 대한 ‘특혜’는 최종 면접단계에서도 있었다. 최종 임원 면접 때 합격권인 여성 2명을 탈락시키고 합격권 바깥에 있던 남성 2명이 그 자리에 들어간 것이다.
하나은행 안팎 고위직의 추천을 받아 특혜 채용된 것으로 적발된 경우는 16건에 달했다. 추천자가 ‘김○○(회)’로 기재돼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연루 의혹이 불거진 건 외에 함영주 현 하나은행장도 개입 정황이 드러났다. 추천 내용에 ‘함○○대표님(ㄱ시장 비서실장 ㄴ씨)’으로 표기된 지원자는 합숙면접 점수가 합격권이 아니었는데도 최종 합격했다. 금감원 검사 결과, 함○○은 2013년 당시 하나은행 충청사업본부 대표(부행장)인 함 행장인 것으로 파악됐으며 해당 지원자는 ㄱ시장의 비서실장 ㄴ씨의 자녀였다. 이에 대해 하나금융 쪽은 “당시 해당 시의 시청 입점 지점장이 추천했는데 지방에선 통상 사업본부 대표 이름으로 추천을 올리다보니 함 행장 이름이 올라간 것”이라며 함 행장의 개입 의혹을 부인했다.
추천자가 ‘짱’으로 표기된 지원자 6명 중 4명이 합격했는데, 이 중 3명은 합격기준에 미달한 경우였다. 여기서 짱은 당시 김종준 하나은행장이었다. 김 전 행장은 아들 친구 2명과 다른 금융지주 임원 부탁으로 계열 은행의 직원 자녀 2명을 추천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추천 내용에 ‘국회 정무실’ ‘청와대 감사관 조카’라고 표기된 지원자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서류·합숙 전형에선 합격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으나 임원 면접 점수 조작으로 최종 합격했다. 최성일 부원장보는 “‘국회 정무실’이나 ‘청와대 감사관 조카’ 등은 조사 권한의 한계 탓에 추천자가 누구인지 파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명문대를 졸업한 지원자에게도 어김없이 특혜가 주어졌다. 하나은행 인사부장과 인사팀장, 인사 실무자 3명은 전형 단계별로 비공식 회의를 열어 지원자의 출신학교를 고려해 순위를 조정했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와 그 외 국외 대학 출신자들이 가점을 받았다. 2013년 공채에서 이렇게 채용된 인원은 14명이나 된다. 금감원은 “실무 면접에서 탈락한 명문대 졸업 남성 9명은 합격하고, 비명문대를 나온 남성 지원자 9명은 합격권임에도 일괄 탈락했다”고 밝혔다.
이날 금감원은 “채용비리 정황 및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소지에 대해 확보된 증거자료 등을 검찰에 수사참고자료로 넘겼다. 향후 엄정한 수사를 위해 적극 협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경락 정세라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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