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사임한 김기식 전 금감원장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투자협회에서 자산운용 대표이사 간담회를 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근본적으로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주어야 한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16일 사임한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에 대한 거취 논란이 확산되던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낸 입장문 가운데 한 대목이다. 금융은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선 해당 분야 관료 출신보다는 개혁 성향의 인사가 필요하다는 의중이 실린 것인데 이 입장문이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문 대통령이 거론한 ‘금융개혁’ 과제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탓에 금융권 안팎의 해석만 무성하다.
현 정부에선 ‘금융개혁’ 대신 ‘금융혁신’이라는 용어를 주로 써왔다. 지난 2월 금융위원회는 국회에 보고한 업무계획을 통해, “금융안정과 엄정한 시장질서 아래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금융혁신을 일관되게 추진하여 ‘사람 중심의 지속성장 경제’ 구현을 적극 지원”하는 것을 금융정책의 목표로 제시했다. 구체적인 과제로는 금융권 채용실태 점검, 최고경영자 선출 투명성 제고, 금융 분야 경제민주주의 달성,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혁신기업 금융 지원 확대(생산적 금융), 서민 금융부담 완화(포용적 금융) 등이 총망라됐다. 지난해 말 활동을 종료한 금융판 적폐청산 기구 이름도 ‘금융행정혁신위원회’였다.
진보성향 금융인이며 금융당국 수장으로 거론됐거나 현재 하마평에 오르는 이들은 금융개혁의 핵심 과제로 금융감독기구 체계 개편을 꼽았다. 금융감독기구 개편은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기능의 분리를 통해 상호 견제하는 구조를 갖추는 것을 가리킨다. 역사적으로 오랜기간 여론의 심판대에 오른 ‘모피아’(옛 재무부+마피아)를 견제하는 감독체계이기도 하다. 이는 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최흥식 전 금감원장 등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라인이 모두 강조해온 사안이다. 낙마한 김기식 전 원장의 취임 일성도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문 대통령이 말하는 금융개혁은 금융감독기구 체계 개편을 가리키는 것 같다. (감독정책이 관료의 지배를 받는) 현 구조에선 관치 금융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문 대통령이 언급한 개혁의 핵심은 금융감독체계 개편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금융 관료들의 저항이 가장 거센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금융회사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금융규제 완화도 금융개혁으로 문 대통령이 보고 있을 것 같다. 관치금융도 복잡다단한 규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대체로 관료들은 규제완화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와 고 교수는 모두 후임 금감원장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현 정부의 금융개혁 과제로 등장한 적이 없다. 금융권 적폐 청산을 위해 꾸려진 금융행정혁신위원회도 청와대와 정부의 요구에 따라 감독체계 개편은 안건으로 올리지도 못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운전대에 올라앉으니 금융을 산업정책의 불쏘시개로 쓰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니겠나”고 꼬집었다.
또다른 후임 금감원장 후보군으로 꼽히는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전 대표는 “현 정부가 금융개혁 과제를 어나운스(발표) 한 적이 있느냐”라고 되물었다. 주 전 대표는 “현 정부의 핵심 정책과제로 제시한 생산적 금융이나 포용적 금융은 말 그대로 금융회사에 대출을 더 많이 하라는 것인데, 이런 건 금융개혁이라고 부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도 “감독체계 개편이 금융개혁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데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런 전문가들의 인식과 달리, 일반적인 국민여론은 ‘금융개혁=재벌개혁’으로 보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문 대통령의 페이스북 계정이나 김기식 원장 사임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금융개혁을 삼성 등 재벌개혁과 동일시하고 있는 의견글이 많다. “(보수언론·정당 등) 저들이 공격하는 것은 다 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금융이야말로 우리나라를 개혁할 핵심부분이다. 밀리면 안 된다”는 식이다. 전 교수는 “2금융권의 상당수 기업이 재벌그룹 계열사이기 때문에 금융정책 및 감독이 재벌개혁 과제와 맞닿는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정부가 추진하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강화나 금융그룹 통합감독 등을 염두에 두면 이런 재벌개혁 정책도 금융개혁 과제로 꼽힐 수 있다”고 말했다.
정작 금융개혁을 이끌어야 할 금융당국 간부들도 동상이몽을 하고 있다. 금감원의 한 국장은 “과거 정부에서 부역한 금융회사 시이오(CEO)들을 물갈이하겠다는 의도인가 싶다”고 말했고, 금융위원회의 한 과장은 “금융산업 육성 정책보다는 금융소비자 보호에 더 신경쓰라는 취지로 금융개혁을 말씀하신 듯 하다”고 말했다. 금감원의 한 팀장은 “금융개혁이란 말 자체를 현 정부 들어서 안 써왔는데 대통령의 의중이 궁금할 뿐”이라고 털어놨다.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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